"도시의 마천루위에서 물끄러미 인간세상을 내려다 보는 천사.

어느날 그가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천사는 피와 살이 있는 인간으로 육화되어 하강한다"

이 엉뚱한 상상에 대한 독일과 미국의 문화의식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영화가 개봉된다.

이달 중순 호암아트홀에서 선보일 "시티 오브 엔젤"은 현대 독일영화의
대부 빔 벤더스가 만든 "베를린 천사의 시"를 리메이크한 "헐리우드
영화"이다.

브래드 실버링 감독은 영화 "캐스퍼"로 한국팬에게 친숙해진 신예.

그가 난해한 상징과 기호들로 가득한 "베를린 천사의 시"를 감미로운
사랑이야기로 바꾸어 내놓았다.

리메이크인 만큼 기본 골격은 비슷하다.

인간사이를 떠돌며 사람의 속이야기를 듣던 천사가 인간과 사랑에 빠진다.

"손으로 만져지는 육체의 느낌"을 갈망하던 그는 스스로 날개를 떼어내고
고통과 번민으로 가득찬 인간세상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영화의 주제나 색깔은 완전히 다르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통일 직전 독일사회의 음울한 풍경과 인간군상을
차가운 흑백화면으로 그려냈다.

독일 언어극의 개척자 피터 한트케가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는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영화"란 찬사와 함께 빔 벤더스에게 칸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주었다.

"시티 오브 앤젤"은 보다 인간적이다.

사랑이라는 세속적인 주제와 현실적인 인물설정이 친근감을 준다.

니콜라스 케이지, 맥 라이언 등 헐리우드 정상의 스타를 기용해서 "잉글리시
페이션트" 제작팀이 만들어낸 멋진 화면과 음악도 블록버스터(흥행영화)란
말에 부끄럽지 않다.

대신 원작의 미덕인 진지한 고민이 사라지고 로맨틱 코미디만 남았다는
평을 받았다.

원작의 천사 다미엘은 순진한 세스로, 서커스단의 곡예사 마리온은 여의사
매기로 대체됐다.

형사 콜롬보의 피터 포크가 연기했던 선배천사역은 다이하드2의 멍청한
경찰서장 데니스 프란츠가 물려받았다.

빔 벤더스의 영화가 일반관객에겐 "어렵고 지루하다"는 인상을 주는 만큼
영화사측은 "소재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강조한다.

두 영화의 색깔을 비교해가며 보는 것도 영화팬에겐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 같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