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사회불안 심리가 독재를 부른다.

안전과 집단보호를 바라는 대중이 카리스마를 원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유럽사를 피로 물들인 아돌프 히틀러(1889~1945).

천재와 광기의 두얼굴을 지닌 그의 일생이 "히틀러 평전"(요아힘 페스트저
안인희역 전2권 푸른숲)으로 묶여나왔다.

이 책은 그가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면서 선전과
폭력으로 국내외 적들을 무너뜨릴수 있었는지, 스스로의 파괴욕에 의해
얼마나 비참하게 침몰했는지를 보여준다.

오스트리아 변방출신으로 할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성도 불확실한 역사의
이단아.

실업중학교 중퇴뒤 화가나 건축가가 되고 싶었던 그가 일찍 아버지를 잃고
열여덟에 어머니까지 죽자 고아로 떠돌다 세계사의 격랑을 일으키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히틀러가 등장하기 직전의 독일사회는 지금의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당시 독일은 극심한 경제위기와 대량 실업,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중산층의
불안감, 군국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낯선
통치제계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마르크화 가치가 1백분의 1로 추락하고 두가구중 한가구가 실업상태에
빠졌다.

여기에 러시아혁명의 후유증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이 사회전체에
확산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히틀러는 추락하는 중산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고통에서 응축된 힘을 모으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원하는 군중의 희망을 포착한 그는 미미한 지역정당인 국가사회당을 정치의
중심세력으로 키워냈다.

33년 수상직에 오르고 이듬해 대통령 권한을 승계하기까지만 해도 그는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노동의욕을 되살리고 고속도로와 신도시주택 등 건설붐을 일으키면서
기업가들을 격려해 경기를 회복시켰다.

독재정권 초기의 효율성과 세계경제의 회복세도 또다른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저자는 히틀러의 구호가 처음부터 경제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서로 이해가 다른 계급간의 차이를 없애고 "제3의 가치"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국가와 명예 희생 헌신 믿음 등을 전면에 내세웠고 모든 혼란의 책임을
공산주의와 유대인에게 돌려 국민들의 "과녁"으로 제시했다.

그가 게르만민족의 결집된 힘을 전쟁이라는 파괴적 에너지로 몰아가게
된 것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독일국민과 시대상황은 그가 연출한 20세기 최대 잔혹극의 무대장치에
불과했던 셈이다.

이 책은 "고독한 대중"을 끌어들여 개인적 신념을 맹신토록 한 그의
이율배반적 행로를 통해 인류가 오랜 기간 쌓아온 문명과 도덕의 덮개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