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다.

주가가 연일 폭락하면서 종합주가지수 300밑으로까지 추락했건만 증권사
객장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

여느 때같으면 손실을 입은 성난 투자자들이 격문을 써붙이고 구호를
외치면서 "증시를 살려내라"고 아우성을 쳐야 하는 시점이다.

지난해까지는 주가가 어느 정도만 떨어져도 늘상 그래 왔다.

정책당국인 재경원이나 증권감독원은 물론이고 증권거래소같은 유관기관이나
언론사에도 투자자들의 항의와 협박전화가 줄을 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주가가 아무리 떨어져도 투자자들은 데모를 하거나 항의전화를 할 생각을
않는다.

그저 한숨쉬며 탄식만 할 뿐이다.

올해로 20년째 증권거래소에 근무하는 L차장은 "증권계에 몸담은 후 처음
보는 현상"이라고 놀라워 하기까지 한다.

주가하락에는 그야말로 만감하게 반응하던 투자자들이 왜 갑자기 이렇게도
점잖아 졌을까.

"데모도 뭐 기대할게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객장에서 만난 투자자의 한마디에 그 모든 이유가 함축돼 있다.

금리든 통화량이든 증시대책이든 IMF(국제통화기금) 등과의 협의 없이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정책당국의 처지를 투자자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국민이 정부의 힘을 믿을 수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가가 떨어졌다고 데모를 하는 것은 물론 옳은 일이 아니다.

주식투자는 손해를 보든 이익을 보든 투자자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썰렁한 객장"을 바라보면서 서글픈 마음을 감출 수없는 것은
비단 나하나만이 갖는 느낌일까.

최인한 < 증권부 기자 janu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