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은 과연 있는가"

김대중 대통령의 귀국을 앞두고 재계가 초긴장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 여당이 강력한 진화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빅딜설은 좀처럼
사라질줄 모른다.

일부에서는 빅딜설이 재계의 반발로 일시 잠복기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기업들은 "결코 빅딜은 없다"며 공식 부인을 거듭하고 있지만 다가오는
김 대통령의 귀국 날짜가 두렵기만 하다.

정 재계가 12일 일제히 "빅딜부인"에 나선 가운데 빅딜 성사론 주장도
만만찮다.

빅딜성사를 뒷받침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박태영 산자부 장관과 미국 투자컨설팅사 후리한 로키 하워드
수킨의 제임스 수킨 대표의 발언.

재계에서는 박장관이 이날 미국 LA에서 열린 투자포럼에 참석, "대기업
그룹간 빅딜이 논의되고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 귀국직후 발표될 것으로
안다"고 발언했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이자리에서 수킨 대표도 "5대 재벌에 속하는 한국의 2개 재벌그룹 회장이
사업교환을 전제로 기업분석을 의뢰해 자산평가를 해준적이 있다"고 밝혔다.

후리한 로키 하워드 수킨은 컨설팅업계에서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업체.

그러나 "극도의 기밀을 유지해야하는 작업에는 대형업체보다는 무명의
전문업체를 이용하는게 관례"(모 회계법인 관계자)라는 점에 비춰볼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3각 빅딜설의 대상인 삼성자동차 현대석유화학 LG반도체가
부실판정 대상에 올라 퇴출여부를 판가름받고 있다는 금융계 소문까지
맞물려 빅딜 가능성을 높여주고있다.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이 "말실수를 했을리가 없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김실장은 정치권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치밀한 인물.

그런 김실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기업인들앞에서 하는 첫 강연회에서
실수할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다.

미국출장길에 올랐던 구본무 LG그룹회장이 11일 급거 귀국했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구회장은 일정을 2~3일 앞당겨 돌아왔다.

< 노혜령 기자 hroh@ >

빅딜은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빅딜의 발원지로 알려진 정치권이
자발적으로 빅딜가능성을 전면 부인한데 따른 것이다.

박태준 자민련 총재는 빅딜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정치권이
주도하는 인위적인 빅딜은 없다고 재계고위관계자에 알려왔다.

이규성 재경부장관도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구조조정의 모든 결정은
기업이 알아서 할일"이라며 강제 빅딜 가능성을 부인했다.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은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경총월례조찬
간담회에서 "빅딜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연초 빅딜얘기를 처음 깨냈던 김원길 국민회의 정책위의장도 "빅딜문제에
국민회의가 전혀 개입한 적이 없다"며 인위적인 빅딜가능성을 일축했다.

빅딜의 대상기업으로 알려진 대기업도 잇달아 빅딜이 논의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이순동전무는 12일 사내 특별방송을 통해 "빅딜문제는
올해초 정치권에서 거론되다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용도폐기된
사안"이라며 그룹 전계열사 직원들에게 빅딜논의가 없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전무의 발언은 최근 정치권의 빅딜시나리오가 삼성의 구조조정안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을 부인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 LG그룹은 빅딜논의 처음 나왔을때부터 당혹감을 표시하며 완강히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다.

현대그룹 이계안 부사장은 "빅딜논의는 당사자간 이해가 맞아떨어져야
성립되는데 최근의 빅딜안은 어느 기업에도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각 그룹을 통해 빅딜진행과정을 알아본 결과 실제로
빅딜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