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금융감독위원회가 3일 느닷없이 5대그룹 계열사도 퇴출대상에
포함시키라고 한 것과 관련,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누차에 걸쳐 밝힌 은행자율 원칙에 어긋날 뿐더러 일관성없는
정책에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은행들은 퇴출대기업 명단을 이날 확정하고 상업은행을 통해 감독당국에
보고하는 등 "살생부" 마련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한 상태였다.

은행들은 부실판별 유보기업도 함께 보고했다.

상업은행 관계자는 살생부 재작성 소식을 듣고 "사전에 전혀 통보받은 바
없다"며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부실판정을 지난달말 끝냈다고 해서 부실기업 정리를
안하겠다는게 아닌데 강제적으로 밀어부치다니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고
갸우뚱했다.

그러나 한 은행장은 "5대그룹의 주력사를 퇴출시키라는게 아니라 부실
징후가 있는 일부 단위계열사를 대상으로 하라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예상
보다 파장이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금감위의 이번 조치로 "판별유보"된 기업들의 운명이 당장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 기업중 특히 관심을 끄는 기업은 30대그룹에 속하는 기업으로 두 곳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군데는 협조융자를 받았으며 다른 하나는 최근 시중에 부실기업으로
소문이 나도는 기업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 기업에 대해 주채권은행은 살려보겠다는 입장을 나타냈지만 여신규모
가 적은 은행들에서 강력히 퇴출시키자는 목소리를 냈다는 후문이다.

은행관계자는 "두 기업의 경우 향후 조정위원회를 통해 회생할 가능성도
엿보였으나 당국의 방침이 급선회함에 따라 운명이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부실징후기업판정에 금감위가 개입한데 대해 재계는 한목소리로 반발하고
있다.

잠잠해진 살생부파문이 다시 일어 정상적인 회사경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부실기업판정시기도 늦춰짐에 따라 일부 그룹의 해외매각 및 외자유치협상도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금감위의 이번 결정을 정부정책의 또다른 혼선으로 해석했다.

부실판정을 은행에 한번 맡겼으면 원칙대로 진행되도록 놔둬야지 이번처럼
금감위가 직접 개입하면 기업과 은행간 신뢰가 깨질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