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실기업 강제퇴출 파문이 확산되면서 기업의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기업들이 외국사와 추진해온 외자유치 협상은 성사단계에 와있던 것까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계열사나 부동산을 매각하려던 계획도 가격 추가하락을 예상한 외국인들이
발을 빼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고 있다.

"살생부"에 오른 기업들은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자금팀에 비상이
걸렸다.

사실 부실기업 조기정리는 은감원이 이달초부터 추진해온 것이어서 이정도
충격을 주지는 않을 사안이다.

그러나 김대중대통령이 이를 직접 언급한 다음날 곧바로 경제는 대혼란에
빠졌다.

설익은 정부정책이 기업만 멍들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외자유치 협상이 중단됐다 =최근 해외 파트너에 합작 지분 전체를
넘기려 했던 A사는 "부실기업 정리 방침이 확정된 후에 보자"는 파트너를
설득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이 회사는 이달중 해외에서 발행할 계획이었던 5천만달러의 해외채권도
국내 은행권에 대한 신용도 하락에 따른 금리부담으로 발행이 연기됐다고
설명했다.

외자유치는 커녕 자금조달난만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부실징후기업으로 거론돼온 B그룹도 정부방침이 나온 직후부터 외국
자본가들의 투자문의가 급속히 사라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살생부가 나돌면서 5대그룹 외에는 신용이 바닥
으로 떨어졌다"며 "외국인들은 부실기업정리가 일단락된 후에야 한국에
진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그룹 관계자는 "일본을 필두로 외국투자조사단이 몰려오는 시점에 부실
기업정리 방침을 밝힌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직접투자는 늘어날지 몰라도
합작이나 지분참여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 매물이 안나간다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서울 시내에 있는 주요 계열사
사옥 등을 매물로 내놓았던 C사의 경우는 증권가에서 정리대상기업이란
소문이 나돈 이후 협상파트너의 태도가 달라졌다.

일부 건물의 경우는 금주중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로 돼있었다.

그러나 파트너가 합의보다 20% 낮은 금액을 제시해 협상이 깨질 위기에
몰렸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금감위가 지난달 내년까지 부채비율을 2백% 이하로
낮추라고 했을 때도 가격이 30% 가까이 떨어졌었다"며 "조급한 상태에서
어떻게 협상을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가 원하는대로 "알짜배기" 기업을 매물로 내놓았던 D그룹도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이 부실기업 강제퇴출을 "급매물 값 후려치기"의 호기로 여기고
있다는게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그는 "망하고 나면 거의 공짜로 살 수 있는데 왜 위험한 투자를 하겠느냐"
고 협상파트너가 냉정하게 나오는데 할 말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전경련 관계자는 "금주 들어서만 2~3건의 부동산매각협상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회원사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 기존 대출금도 갚아야 한다 =일부 은행들은 벌써부터 대출금회수에
나서고 있다.

부실채권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해당 업체 자금팀엔 비상이 걸렸다.

당장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조차 어려운 판이어서 "갚을 돈"을 새로 구하기
는 더 어렵다.

모업체 관계자는 "이러다간 정리도 되기 전에 부도날 지경"이라며 "멀쩡한
기업까지 망하게 하는 것이 구조조정이냐"고 되물었다.

<> 수출도 마비될 형편이다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온 E사의 경우
"일상적인 해외영업 활동조차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털어 놨다.

살생부에 거론되고 있는 기업의 해외 고정바이어들은 거래선을 제3국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출이 줄면 공장가동률은 더욱 떨어지고 결국 도산으로 치닫게 된다.

수출로 버텨가며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는 기업전략은 더이상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다.

최근 자금악화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모그룹계열 종합상사 관계자는
"수출은 그만두고라도 외상 수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추락했던 기업신용이 다시 곤두박질치면서 건설 및 플랜트수주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수주를 해도 프로젝트이행보증을 서줄 금융기관을 찾을 수 없어서다.

무역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경상수지흑자폭을 확대하는데
적지 않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이익원 기자 iklee@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