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사가 또다시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등급을 낮춘 것은 따지고
보면 의외의 일은 아니다.

한마디로 거듭 약속한 구조조정이 늦추어지고 있는게 그 이유다.

지난 8일 S&P의 내피어 아.태담당이사는 한국경제신문이 후원한 강연회에서
"앞으로 1~3년 이내에 신용등급 상향 조정은 무리"라고 말했었다.

결국 무디스의 조치는 외국 투자자들이 최근 한국에서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실망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디스는 19개 한국 금융기관들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면서 "기업 구조
개혁이 미루어지면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늘어나고 따라서 지급능력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 등 3개 국책은행에 대해서는 "재정상태가 악화되고 있으며 정부의
지급보증도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정부의 금융개혁 청사진이 발표되고는 있지만 과연 그대로 실행될지도
분명하지 않다"는 배경설명을 달았다.

한마디로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실채권 문제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부실채권의 규모를 1백조원으로 평가한데 대해
외국의 평가기관들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노동시장의 불안이 또다른 걸림돌로 등장해 있으며 인도네시아의
혼란도 한국에 대한 인식개선을 가로막고 있다.

문제는 무디스사의 조치가 한국의 구조조정 노력에 다시 찬물을 끼얹을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힘들여 타결한 외채협상은 국내금융기관이 해외에
지고 있는 5백27억달러의 외채중 불과 2백10억달러의 만기를 연장한데 불과
했다.

따라서 국내은행들의 기존외채 연장과 개혁에 필요한 신규외채 조달에 적지
않은 부작용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또 은행의 신용등급 하락이 기업과 국가등급의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은 "6월중으로 살릴 기업과 죽일 기업을 정하겠다"(10일
국민과의 대화)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도태될 기업들의 명단이 곧이어 터질 것이다.

기업구조조정은 어차피 겪어야 될 과정이지만 자칫하면 제2의 충격파로
귀결될 수도 있다.

어떻든 무디스의 이날 조치는 "앞으로 가지 못하면 결국 뒤로 밀려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가전망이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뀐지 두달이 못돼 반전된
것이어서 더욱 당국과 금융기관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 정규재 기자 jk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