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분량의 자료였지만 자세히보니 그게 그거였습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에 못미치는 12개은행이 지난달말
제출한 정상화계획서는 은행마다 두꺼운 책 몇권 분량이었다.

이 자료를 본 금융감독위원회 직원은 막연한 내용 일색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자료는 은행이 합병될지 아니면 폐쇄될지를 가름하는 잣대가 된다.

그러나 은행 임직원들 얼굴에선 비장감 같은 건 찾아볼수 없었다.

"서로 대충 맞췄는데 뭐 큰일이야 생기겠어요. 은행문을 닫는게 어디
쉬운일입니까"

"이젠 무슨 얘기를 해도 겁이 안납니다. 우리야 시키는대로 하는거죠"

금융감독위원회나 은행감독원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은행을 폐쇄한뒤 어떻게 할지는 검토해본적이 없는데요. 그때가서
생각하면 되겠죠"

다들 먼 훗날에 있을법한 일쯤으로 여기고 있다.

왜 이처럼 모두가 긴장이 풀린 것일까.

재경부도 예외가 아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경영정상화계획을 만든 조직이나 이를 들여다보고
평가하는 조직이 모두 태스크포스팀(TFT.임시조직)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은행들은 부랴부랴 계획을 작성하기위해 TFT를 급조했다.

금융감독위도 이름을 수차례 바꿔가며 수개의 TFT를 구성했다.

TFT의 장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신분이 불안한 사람들이 모여 책임있게 일을 처리하길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태스크포스인데 뭐 알겠습니까"

은행TFT에서도 스스로 살길을 찾으려는 뼈를 깎는 고민은 찾아볼수 없다.

허귀식 <경제부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