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증시가 공전의 활황 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요즘 월가에서는 때아닌
"벼룩 간"논쟁이 일고 있다.

IBM 트래블러스 코닥 등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스톡 옵션을 통해
봉급의 몇배가 넘는 돈을 주식시장으로부터 "긁어가고" 있어서다.

스톡 옵션이란 상장 기업이 주로 고위 임원들에게 일정한 양의 회사주식을
사전에 정해진 낮은 가격으로 배당해 주는 제도다.

안그래도 거액의 연봉을 챙기고 있는 경영자들이 이렇게 배당받은 주식을
매각해 가외수입을 챙기고 있으니 개인 소액투자자들의 "간"을 떼어먹는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경영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웬만큼 스톡 옵션을 주는 것은 모르지만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예컨대 트래블러스그룹의 존 웨일 회장은 지난해 스톡 옵션으로
1억5천여만달러를 챙겼다.

이는 1만달러를 주식에 투자한 소액 투자자 1만5천여명의 돈을 고스란히
가져간 것이나 다름없다.

사정이 이러니 일반 투자자나 근로자들의 상실감이 높아지는건 당연하다.

미국 산별노조 총연맹(AFL-CIO)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해 미국
일반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률은 물가 상승률에도 못미치는 3%였다.

하지만 대기업 경영자들은 39%가 오른 평균 2백30만달러의 돈을 가져갔다"
며 목청을 높였다.

굳이 스톡옵션 논란이 아니더라도 요즘 미국 사회에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대한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전문 월간지인 스마트머니는 5월호 특집 기사에서 미국 인구의 1%인
최상류층 2백60만명의 수입이 중.하층 8천8백만명의 소득과 맞먹는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특히 지난 80년대 이후 계층간 소득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
했다.

미국의 GDP(국내총생산) 가운데 상위 5%의 점유율이 80년대초에는 16%정도
였으나 96년에는 21.4%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중.하위 20%의 소득 비중은 4.3%에서 3.7%로 뒷걸음질쳤다고
분석했다.

또다른 경제전문지인 워스 매거진은 미국 2백50대 부촌을 소개하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이중 3분의 1이 넘는 90개 타운이 월가와 통근 거리에 있는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3개주에 밀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연평균소득이 8천달러가 안되는 가구가 몰려있는 곳도
뉴욕의 할렘및 월가와 지근거리에 있는 켄터키 테네시 등이었다.

이처럼 미국의 계층간 지역간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데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의 몫까지 가져가는 "약탈적 소득이전 현상"이 가세하고 있다는게
요즘 미국 언론이 전하는 메시지다.

약탈적 소득이전 현상은 미국내에서만 국한된게 아니다.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뉴욕 금융가에서는 얼마전 한국이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을 놓고도
같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40억달러어치의 외평채 발행 주간사를 맡았던 골드만삭스 등 미국
금융기관들이 채권 인수및 판매 수수료 등으로 발행 규모의 2%에 달하는
8천여만달러를 챙긴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한푼의 달러가 아쉬워 높은 금리를 불사하고 국채를 발행한 나라를 상대로
"서류작업" 좀 해주고 거액을 챙겨갔다는 비난이다.

우리쪽에서 보면 "비난"이지만 그쪽에서는 당연한 "시장현상"이랄 수 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시쳇말이 있지만 "돈이 보이면 마른 수건도 쥐어
짜는"게 월가의 생리라는 데는 할말이 없을 따름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