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국제금융통으로 알려진 정덕구 재정경제부차관은 요즘 심기가
불편하다.

선진13개국(G13)으로부터의 자금도입협상도 여의치 않았고 세계은행(IBRD)도
추가차관지원에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출장목적은 "G22 재무장관및 중앙은행총재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가 국제협상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우리 정부는 IBRD로부터 싫은 소리도 들었다.

IBRD는 한국정부가 오는 6월중 출범예정인 구조조정기금에 협의도 없이
IBRD 자금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한 대목을 "항의"했다.

당황한 정부대표단은 유감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 국제금융 전문가들로부터도 달갑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이 경제개혁에 몰입한 나머지 국제금융의 관행을 자주
벗어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어쨌든 이번에 "뉴머니(새로운 자금도입)" 협상이 가시적인 성과없이
끝나면서 정부는 올해 외환수급을 우려하게 됐다.

연말까지 목표로 잡고있는 외환보유액 4백7억달러에는 G13국의 후선지원자금
80억달러와 IBRD의 추가차관 50억달러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경상수지흑자가 매월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실물경제침체와
국제수출가격 하락으로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나아가 현재 3백억달러를 간신히 넘긴 가용외환보유고로는 최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금융위기가능성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뉴머니 도입을 전제로 추진해 왔던 해외신인도의 개선도 불투명해졌다.

이렇게 되면 민간차원의 신디케이트론 도입도 어려워질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걱정은 구조조정의 차질이다.

정부는 올 하반기 IBRD로부터 50억달러를 들여와 기업및 금융기관구조조정과
실업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 돈으로 금융기관 부실채권을 사고 은행뿐만 아니라 투신사 리스사 등의
구조조정에도 사용한다는 구상이다.

날로 늘어나는 실직자들과 원자재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출기업들도
이 자금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실직자 생계지원을 위한 고용안정 비실명채권(1조6천억원규모)의 판매가
부진하자 일각에서는 IBRD에 대해 조기지원을 요청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재계는 무역금융지원을 위해 외환보유고에까지 손을 내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뉴머니 도입이 끝내 무산되면 정부는 별도의 재원및 외환확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뾰족한 대책이 없는게 문제다.

이미 부실채권정리와 예금자보호 등을 위한 특수채가 쏟아지고 있는 만큼
대규모의 추가채권발행은 쉽지 않다.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어가고 있다고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냉철한 상황판단과 치밀한 대응이 요청된다.

< 조일훈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