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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치구의 중소기업 이야기] (46) '다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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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남산식물원 뒷쪽에 가면 낡아빠진 나무벤치가 하나 있다.

    뷰테크의 김구병(48)사장은 꼭 12년만에 이 벤치를 다시 찾았다.

    그곳에 앉자 회한이 몰려왔다.

    "평생에 한번만 도산해도 다시 일어서기 힘든데 이렇게 두번씩이나
    망하다니"

    김사장이 처음 도산을 한 건 지난 86년 봄.

    그때 그는 석달동안 이 벤치로 출근한 일이 있다.

    달리 갈곳이 없어서였다.

    당시 논현동 네거리 신태양빌딩 2층에서 원신교역이란 무역회사를
    경영해왔는데 비료 해외입찰에 손댄 것이 낭패였다.

    중국 복건성 비료입찰등에 참여했으나 1년반동안 단 한건도 성사시키지
    못한 채 완전히 파산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 벤치로 출근을 하게 됐던 것.

    석달만에 벤치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과욕 때문이란 거였다.

    김사장은 다시 무역회사 사원으로 취직했다.

    사장에서 사원으로 전락했음에도 무척 열심히 일했다.

    다시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로부터 1년여뒤인 87년 7월.

    종업원 15명인 회사를 빚을 안은 채 1억2천만원에 인수했다.

    모자라는 돈은 은행에서 빌렸다.

    이듬해에 그는 6억원어치의 전자부품을 홍콩으로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때부터 성장가도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런 성공도 잠시 뿐.

    지난해 11월 위탁업체의 사장이 납품대금으로 발행한 2억9천만원 상당의
    어음을 부도낸 뒤 미국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이 바람에 그는 느닷없이 연쇄부도를 당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그는 다시 남산 벤치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쌀쌀한 날씨인데도 분노가 끓어올라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쁜 자식..."

    미국으로 도망간 사장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다.

    믿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터라 화가 더 치밀었다.

    어떻게든 미국으로 달려가 친구를 잡아 다그치고 싶었다.

    이번 부도야말로 내탓이 아니라 네탓이란 생각 때문에 아무리해도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이젠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보기 싫어졌다.

    그렇지만 벤치에서까지 견딜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갈곳이 없어졌다.

    이때 그는 문득 중구 정동에 가면 "다일사"란 곳이 있다는 동료의 얘기가
    떠올랐다.

    다일사란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을 줄인 말로 기독교단체인 구세군이
    열어놓은 실직자및 부도기업인을 위한 쉼터.

    30평남짓한 작은 사무실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많이 마주쳤다.

    부도로 감옥살이를 한뒤 갓나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젠 자살밖에
    길이 없다는 사람도 만났다.

    위로를 받기 위해 이곳에 나온 김사장은 오히려 이들의 고통을 상담해주는
    입장이 돼버렸다.

    포장마차에서 밤늦도록 이들을 달래기도 했다.

    거의 한달간 다일사를 드나들면서 그는 오히려 자신이 달라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울분이 차츰 가라앉고 있는 걸 느꼈다고 한다.

    며칠전 김사장이 어느때보다 힘찬 목소리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전자부품업체인 뷰테크에 전문경영인으로 취직을 했다는 거였다.

    두번씩이나 도산을 하고서도 거뜬히 일어선 것이다.

    지금도 한적한 벤치에서 혼자 울분을 삼키는 부도기업인들이여.

    이제 사람들 틈으로 돌아가자.

    분노를 가라앉히고 다시 일어서자.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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