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전격적으로 철회한 것은 무엇보다 국민들로부터
지지받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외면하고 총파업을 강행했다가 경제가 파탄에 처하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총파업 지도부는 지난 9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협약을
거부하고 총파업에 돌입키로 결정한뒤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리해고제 도입에 대한 현장의 반발이 거세 힘으로 밀어부치기로
결정했지만 총파업 후유증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명분은 96년말 노동법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정리해고제 반대이다.

그러나 상황은 딴판으로 달라졌다.

노동법파동때는 신한국당의 정리해고법안 기습처리로 총파업에 대해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한 지금은 고통분담이 불가피하고 어떤
이유로든 총파업은 피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총파업 지도부 역시 정리해고제를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법제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외국투자자들에게 2월중 노동시장유연화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터이다.

IMF가 정리해고제 도입을 문서로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정리해고제
도입을 외면하면 이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국제신뢰가
급락,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철회한 내부적인 이유로는 "화력"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총파업을 결정한뒤 67개 사업장이 총파업에 동참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전면파업에 돌입할수 있는 사업장은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사업장들은 중식집회를 연장하는 수준의 부분파업을 벌이거나
조합간부만 집회에 참석하는 선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수도권 최대의 "병력"으로 기대했던 서울지하철공사노조의 전열
이탈이 총파업 전략에 차질을 초래했다.

서울지하철노조는 사측이 51억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취하하자 12일
돌입키로 했던 파업을 철회, 전열에서 이탈했다.

게다가 한국노총이 일찌감치 노사정협약을 추인, 이번에는 "우군"을
기대할 수도 없게 됐다.

총파업 지도부가 총파업으로 인한 손익을 따져본 결과 실리를 택했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명분만 내세워 총파업을 강행할 경우 어렵게 챙긴 "전리품"마저 모두
잃게 된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협상을 통해 전교조 합법화, 노조 정치활동
등 오랜 숙원들을 해결한게 사실이다.

< 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