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그룹에 기조실(회장실) 처리 비상이 걸렸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지난 6일 30대그룹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회장
비서실 기획조정실 등과 같은 지배조직을 조속한 시일내 정리할 것을 다시
요구했기 때문이다.

현대 삼성 LG 대우 등 주요 그룹들은 기획조정실을 없애라는 것이
김당선자가 총수들을 불러 놓고 꺼낸 이야기인 만큼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모색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비상경제대책위원회가 법률적인 근거가 없는 회장실을 운영하는
대기업에는 앞으로 기업자금 전용 혐의로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단시일내 회장비서실이나 기획조정실을 폐지하는게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비서실이나 기조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

다시말해 당면한 과제인 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룹
차원에서 조정기능을 가져야 하는데 기조실이 없어지면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A그룹 관계자는 "비서실이나 기조실의 형체를 없애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기능마저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기조실이 조정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도 구조조정 작업의 추진이 어려운데 각사로 이 기능이 나눠지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더욱이 순수지주회사 허용방침이 유보된 만큼 각 계열사의 업무를 조율할
기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대안 없는 밀어붙이기"라는 볼멘소리도 하고
있다.

재계는 이번 요구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비서실과 기조실의 조직을 꾸준히
축소해 왔다.

현대그룹의 경우 이미 종합기획실을 대폭 축소해 60명의 인력만으로
4개팀을 운영하고 있고 삼성그룹도 지난해 연말 50여명을 계열사로 돌려
보내고 1백명으로 5개팀을 구성하고 있다.

재계는 따라서 구조조정작업을 거치면서 상호지급보증이 해소되고 계열사간
의존도가 낮아지게 되면 자연히 기조실의 기능이 축소되리라고 보고 있다.

재계는 그런 가운데 김당선자측이 기조실 정리의 시한을 일부 언론에
보도됐던 것처럼 이번 주총기간으로 못박은 것은 아닌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 조직을 정리하라는 의도가 분명한 만큼
기조실 정리에 따른 후유증 분석과 대책마련에 부산하다.

<김정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