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들어 가장 재미있었던 게임을 소개한다.

이 게임에는 골프의 모든 속성이 숨어있으니만치 "골프의 정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1일 미플로리다주 크랜던파크GC에서 끝난 미시니어투어 98로열
캐리비언클래식은 종전 시니어투어 최장연장기록을 1홀 경신하며 연장
10번째홀까지 가는 대접전으로 펼쳐졌다.

그 과정은 더할수 없이 드라머틱했다.

호주의 데이비드 그레이엄(51)은 정규라운드 최종18번홀에서의 3m버디로
3R합계 11언더파를 기록, 데이브 스톡던(미국, 56)과의 연장합류에 성공했다.

이 두 주인공은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시니어프로들.

스톡턴은 라이더컵 주장을 역임하는등 미투어에서 총25승을 기록중이었고
그레이엄도 시니어3승을 포함 11승을 마크중인 인물이었다.

<>.18번홀에서 시작된 연장전은 다시 16, 17, 18번홀의 순서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이라이트는 18번홀(파4, 4백19야드)에서 벌어진 연장 4번째홀경기.

그레이엄의 세컨드샷은 핀 80cm에 붙으며 버디가 확실했다.

반면 스톡턴은 세컨드샷이 그린 오른쪽으로 벗어나 온그린에도 실패했다.

홀까지의 거리는 약 12m였다.

웨지를 뽑아든 스톡턴은 캐디로 하여금 깃대를 빼내게 했다.

다이렉트로 넣으며 버디를 잡지 않는한 우승이 무망했기 때문에 깃대맞고
튈 염려를 없앤 것.

아마 붙이려 했다면 깃대를 그대로 꼽아 두었을 것이다.

스톡턴의 그 칩샷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같이" 홀을 한바퀴 돌며
떨어졌다.

만약 깃대를 그대로 두었으면 "돌아 들어가기는 힘들지 않았을까"하는
상황.

상대의 버디가 분명한 경우 자신의 칩샷버디로 비기는 골프는 사실 극히
드물다.

그것은 "오로지 넣겠다"는 투지가 "이젠 졌구나"하는 낙담을 완전히
제압해야 가능하고 100%의 집중으로 압박감을 제로가 만들어야 이뤄진다.

<>.두선수는 다시 연장을 계속했다.

연장 9홀째홀까지 두 선수는 한홀을 버디로 비기고 무려 8홀을 파로 비긴
셈이었다.

말이 "8개홀 파"이지 실제 상황은 비기기위한 1m퍼팅을 실수없이 넣어야
하는 등 "피말리는 싸움"이 매홀 이어진 것으로 봐야했다.

18번홀에서의 연장10번째 홀에서 그레이엄은 세컨드샷을 핀 30cm에
붙이며 길고 긴 승부를 끝냈다.

기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홀에서 스톡턴은 다시 깃대를 뽑고 13m칩샷을 했으나 볼은 홀을 비껴
흘렀다.

10개홀 사투를 잘 견뎌온 스톡턴이지만 그는 결국 시니어투어에서의 6번
연장전을 전패로 마감해야 했다.

반면 그레이엄은 정규라운드를 포함 그날 총5번의 18번홀 플레이에서
파 2번에 버디 3번을 잡아내며 "최종홀에 극히 강한 면모"를 과시했다.

<>.이 게임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10번의 연장전에서 두 선수는 공히 우승찬스를 주고 받았다.

한 선수가 넣을수도 있는 버디퍼팅을 실패하면서 비기면 게임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실상 골프에 "원점"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번의 찬스를 놓치면 그 다음엔 상대방이 그 찬스를
갖게되는 게 골프.

결국 "현재의 한번 찬스"를 놓친다는 것은 게임전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골프에선 "현재의 찬스"가 인생의 전부이다"

< 김흥구 전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