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에 대한 감사원 특감이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른 외환위기에 대한 책임소재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이 특감의 주된 목표다.

청문회를 앞둔 자료수집의 목적도 겸하고 있다.

특감을 실시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치열한 논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감사원은 특감에 착수하자마자 종금사들의 해외자산 유용 등에 대한 증거
확보에 착수하면서 최악의 경우 관계자들에 대한 사법적 처리를 요구키로
하는 등 각오를 다지고 있다.

재경원의 관련자들 역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보는 등 특감과 청문회
준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특감을 앞두고 새로운 사실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 시점, 캉드쉬 IMF총재의 방한 과정, 구제금융 결정및
발표과정, 협상착수 시점, 미국 음모론등과 관련된 새로운 증언들이
드러나고 있다.

특감에서 규명되어야 할 쟁점들과 새롭게 드러나고 있는 외환위기 관련
증언들을 정리한다.

<> 대통령이 IMF행을 재가한 시점 =그동안 우리정부가 구제금융을 요청키로
결정한 시점은 임창열 부총리가 임명장을 받은 이틀후인 작년 11월21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 결정일은 이보다 10일 앞선 11월10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재경원은 11월7일 한국은행과의 연석회의를 통해 더이상 자력으로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

그리고 사흘뒤인 10일 대통령으로부터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라는 재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날 대통령의 재가 방식이 서류상 재가였는지 구두상 재가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대통령은 이날 저녁 9시30분께 직접 이경식 한은총재 자택으로 전화를
걸어 재경원의 보고사항을 재확인했던 것으로 알려져 밤늦게 구두 재가를
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인다.

<> IMF와의 협상개시 시점 =대통령으로부터 IMF행 재가를 받은 강경식
부총리는 바로 캉드쉬 총재를 극비리에 서울로 초청해 11월16일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회의를 가졌다.

김인호 경제수석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서는 <>IMF 관계자를 즉각 서울로 파견해 실사를 벌일 것
<>11월19일자로 구제금융을 공식적으로 신청하는 동시에 <>금융시장안정을
위한 종합대책도 제시한다는 세가지였다.

이같은 결정에 따라 IMF의 스탠리 피셔 부총재와 미재무부의 가이스너
국장 등 관계자들이 18일과 20일에 걸쳐 서울로 급파됐다.

그러나 19일 오전 강경식 부총리가 경질되면서 구제금융 신청발표는 임창열
부총리에게 바통이 넘어갔다.

임부총리는 19일 오후 강부총리 팀이 만들었던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수정
없이 발표했다.

그러나 동시에 발표키로했던 구제금융 신청은 우여곡절을 거쳐 21일에야
공식 발표됐다.

IMF 구제금융 신청발표가 늦어진 것은 IMF쪽에서 대통령후보 3인의 사전
동의를 요구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 재경원의 외환위기 인식시점 =공식적으로는 11월7일 한은과의 연석회의
를 통해 작성한 보고서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미 기아사태가 터졌던 7월말부터 재경원 실무자들과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은행회관에서 잇달아 대책회의를 갖고 외환 수급상황을 체크하는
등 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과정들이 당시 경제총수였던 강경식 부총리에게 얼마나 여과없이
전달되었는지는 특감에서 밝혀져야할 대목이다.

그러나 재경원은 "10월말까지는 외환위기가 임박한 것을 구체적으로 인식
하지는 못했다"는 공식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재경원 고위 관계자는 최근 "10월말 현재 외환보유고는 해외예치금을
빼더라도 2백25억달러에 달해 그리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며 "달러가
급속히 빠져 나간 것은 11월 중순께부터"라고 강조했다.

외환 사정이 기아사태 등으로 계속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부도 일보
직전으로 몰리는 그런 상황은 분명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연중으로 3백억달러에서 3백40억달러의 평잔을 보였던
만큼 10월말의 상황이 특별히 최악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 강경식 부총리 경질 =강경식 부총리가 11월19일 전격 경질된 것은
대통령에 대한 "기아와 외환위기 보고 책임"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강부총리를 경질하면서 IMF행을 결심했다는 것이 그동안의 정설이었지만
이미 11월10일 IMF행이 결정되었다면 강부총리의 경질 배경도 달라진다.

강부총리는 자신의 경질 사실을 19일 아침8시 이날 발표할 금융시장 종합
대책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러 들어간 자리에서야 통보 받았다.

강부총리와 함께 경질된 김인호 경제수석 역시 자신의 경질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었다.

강부총리는 18일 저녁부터 여의도의 기술신보 사무실에서 다음날 발표할
금융대책을 손질하느라 새벽 2시까지 일을 했다.

김수석은 청와대 비서실 저녁모임에 참석한 다음 저녁 늦게 작업에 합류
했다고 한 관계자는 밝혔다.

강부총리는 당초 10월말 대통령에게 사표를 냈는데 즉각 반려됐었다.

재미있는 것은 강부총리가 10월말에 낸 사표의 일자가 11월20일자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강부총리는 결국 자신이 20여일 전에 제출한 사표에 기재했던 바로 그
시점에 경질됐다.

<> 미국의 음모론의 실체 =미국이 10월말이후 한국의 금융위기를 조장하지
않았나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9월이후 한.미간 자동차 협상이나 다자간 투자협정,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금융협상 등에서 한.미간 갈등이 누적되어 왔었다.

최근 재경원의 고위 관리는 "미국의 입김이 분명 있었다고 본다"며 "당할수
밖에 없었다"고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재경원이 이와관련된 증거자료를 얼마나 제출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이 관계자는 "IMF협상이 시작된 다음 임부총리가 미쓰즈카 일본 대장성
장관을 만났을 때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한국을 지원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고
있음이 확인됐었다"고 말해 주목을 끌고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때 일본은 루빈 미 재무장관으로부터 날아온 한통의
서신을 임부총리에게 말없이 보여 주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미국 음모론
의 유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