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20일 오전 일산 자택에서 자민련 박태준 총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19일 발표된 대기업의 구조조정안이 크게 미흡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박총재를 통해 지난 13일 대기업총수들과의 회동에서 합의한 사항들을
기업들이 준수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김당선자는 전화통화에서 "이번만은 기업들이 적당한 구조조정을 해서는
안된다"며 "박총재가 기업총수들을 만나 합의대로 개혁에 노력할 것으로
독려해달라"고 요청했다.

김당선자의 심기를 누구보다 잘읽는 박지원 당선자대변인은 "박총재께서
기업총수들을 만나 김당선자의 이같은 요청을 설명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선자는 (대기업의 구조조정안에 대해)썩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강조하던 김당선자가 이같이 이례적으로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물론 현대와 LG가 발표한 구조조정
안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 그룹의 구조조정안에 대해 불만이 있더라도 별 다른 반응없이 넘어갈
경우 이를 사실상 인정하는 셈이 되는데다 앞으로 있을 다른 기업들의 구조
조정안도 이 범위를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즉 다른 대기업의 구조조정안은 최소한 앞의 두 그룹 이상으로 강력하고도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구조조정의 범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기위한 포석인 것이다.

김당선자는 이날 박총재와의 전화통화에서도 대기업총수들과의 합의사항을
상기시키며 합의내용에 있는 사항을 구조조정안에 반영할 것을 강도높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당선자가 두 기업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 언론발표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이같은 요청을 한 것은 김당선자가
최소한 공개적으로 구조조정안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리해고제의 도입문제로 노동계를 설득하고 있는 김당선자로서는 대기업
특히 총수들의 고통분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김당선자측은 그룹회장의 "사재출자"와 관련, 두 그룹이 "내놓을 게
없다"며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고 있다.

박총재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이 구체적으로 발표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을 이해한다"면서 "모대기업 회장처럼 개인재산을 내놓는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총재는 "대기업 총수들이 경제난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느낀다면
자발적으로 그런 조치들은 취해야 한다"며 "발표된 것만 보면 지난번 합의
사항과 괴리가 있다고 느끼고있다"고 말했다.

또 대기업들이 한계사업분야에서 철수하겠다고 한데대해서도 김당선자측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리대상인 한계사업규모는 전체그룹매출을 감안할 때 극히 미미한 것이고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아 잠시 접어두는 "추진유보사업"은 개혁안에 포함시킬
가치도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김원길 정책위의장은 "적자기업만을 팔겠다는 것이 어떻게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대기업은 주력사업분야에만 전념한다는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김당선자측은 대기업들이 대표적인 개혁사례로 들고 있는 사외
이사제의 경우 제도의 시행보다는 "누가 되고 어떤 권한을 갖느냐"는
실질적인 내용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자민련 박총재는 빠르면 내주초부터 개혁안을 내놓는 기업총수들을
차례로 만나 이같은 김당선자측 시각과 입장을 전달하며 추가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 허귀식.김태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