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을 앞두고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고민이 적지 않다.

지난해 경제침체,IMF파고 등 악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회사를 꾸리느라
고생한 만큼 좋은 성적표를 받고 싶은게 경영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해에는 단기외화차입의 상환에 따른 외화손실이 어느때보다 크고 연말
실세금리의 고공행진으로 금융비용부담도 상대적으로 늘었다.

그렇다고 경기가 좋아 영업이익이 증가한 것도 아니다.

대우증권이 최근 12월 결산 상장법인 3백40개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실적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경상이익규모가 3백80억원에 불과해 기업들의
무더기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IMF관리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올해 경기기상도는 먹구름 일색
이다.

그래서 예전처럼 다양한 회계기법을 동원해 결산을 흑자로 만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부 기업들은 그래서 회사신용이 떨어지는 것을 무릅쓰고 적자를 감수
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기도 했다.

차제에 부실요인을 회계에 반영시켜 떨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현
경제위기에 대처하겠다는 이야기다.

상장업체로 연매출이 1천억원 정도인 경기도 소재의 한 중전기제조업체
사장은 재고조사과정에서 회계사의 평가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결산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따라 제조원가를 줄이기 위해 재고를 부풀리거나 시장성이 없는
관계사 발행주식을 과대 계상하는 편법 회계처리는 상당히 줄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반영시킬 비용을 이연처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IMF시대가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굴지 대기업의 한 임원은 "결산회계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덴
이론이 없지만 적자기업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최근의 금융관행과 자금시장동향에 비춰볼때 적자를 냈다가는 1.4분기도
제대로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다.

대기업의 경우 해외차입 등이 불가능해져 정상적인 경영이 힘들게 되고
기업이미지가 실추될 경우 내수영업마저 위협받게 된다.

대기업 사장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결산문제는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아킬레스 건이다.

특히 전문경영인들은 오너의 눈치를 살펴야한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적법한 테두리에서 순익규모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일부기업들은 유형고정자산의 감가상각기간을 변경하는 방법으로 부담을
덜려하고 있다.

올들어 삼성전자가 영상 음향 통신장비제조자산의 감가상각기간을 5년,
기타 기계장비 제조자산의 감가상각기간을 10년으로 변경키로 결의했다.

삼화콘덴서 신풍제지 아세아제지 등은 감가상각방법을 정률법에서 정액법
으로 바꾸기도 했다.

현대전자 LG반도체 성미전자 등은 연구개발비의 상각연수를 늘렸다.

결국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은 뚜껑을 열어 봐야 알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지난해에는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많았다.

아무튼 은행들이 BIS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듯 기업들
에 97년 기업결산이 갖는 의미는 어느때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기업인들은 당장 97년 결산뿐 아니라 98년 결산까지 염두에 둔 전략을
세워야 한다.

< 이익원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