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축년 증시가 투자자에게 깊은 한만을 남긴채 27일 폐장됐다.

호가표에 한을 날려보내며 새해증시를 기원하던 폐장식도 없이
주식시장은 쓸쓸하게 문을 닫았다.

올해 증시는 한보에서 시작된 기업의 연쇄부도와 국가전체가 부도위기에
몰리는 등 악재에 시달렸다.

세차례의 외국인한도확대등 증시안정책이 나왔으나 그다지 약효가
없었다.

사상 초유의 외국인투매(10~11월)와 기관투자가 매도(12월)에 주가는
10년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폐장종합주가지수는 376.31.연초보다 무려 277.48포인트(42.4%)나
폭락했다.

올해 증시는 5~6월의 한차례 상승을 제외하곤 줄곧 하락세를 나타냈다.

개장하자마자 노동법개정을 둘러싼 총파업 등으로 600선이 위협당했다
(1월7일 611.05).

한보 삼미 진로그룹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부도나 법정관리로 쓰러지며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고 주가는 1.4분기내내 약세를 면치 못했다.

다행히 5월2일 외국인한도가 확대돼 외국인자금이 1조7천2백18억원
(5~6월중)이나 몰려들며 주가를 800선부근(6월17일 792.29)까지 끌어
올렸다.

증시가 대세상승기로 돌아섰으며 900선까지 오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우리나라 편이 아니었다.

재계 8위였던 기아그룹이 7월15일 전격적으로 부도유예대상으로
선정되며 증시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렇다할 반등도 시도하지 못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신인도가 떨어지면서 외국인자금이 8~11월중
1조9천4백74억원이나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외국인들은 은행 건설 증권 등 부실채권이 많거나 부채비율이 높은
주식을 가격에 관계없이 무조건 "팔고보자"며 투매에 나섰다.

개인들이 증시를 구하자며 "의병"을 자임하며 대량매수에 나섰으나
장세를 돌려놓기엔 역부족이었다.

11월21일.

1개월여를 버티던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하자
증시는 또 한차례 홍역을 치뤘다.

구제금융대가로 외국인한도가 50%로 늘어나 외국인은 12월중 소폭
(4천8백37억원)의 순매수를 나타냈으나 환율과 금리가 치솟고 종금 증권
투신 등 금융기관이 차례로 영업을 정지당하거나 부도를 내고 쓰러진
탓이다.

대마불사신화와 함께 "금융기관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신화도 무너진
것이다.

사상 최대의 주가 폭락은 엄청난 부작용도 가져왔다.

신용으로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증권사는 존폐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돼 자금난이 심화됐다.

새로 상장된 종목들은 공모가를 밑돌아 35개 종목이 공개주간사의
시장조성을 받아야 했다.

부도 등으로 관리종목에 편입된 회사가 70개를 넘었으며 액면가를 밑돈
종목도 5백20개로 전체상장종목의 54.2%에 달했다.

그렇다고 97년증시가 얼룩진 기록만 양산한 것은 아니다.

하루평균 거래량이 4천1백38만주로 작년(2천6백54만주)보다 55.9%나
늘었다.

하루평균 거래대금도 4천8백67억원에서 5천5백51억원으로 14.0%
증가했다.

9월1일부터는 주식거래가 완전히 전산화됐고 위탁수수료율과
신용융자기간 및 이자율 등도 자유화됐다.

주가지수옵션시장도 개설되는 등 제도적 보완도 이루어졌다.

< 홍찬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