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기억만을 남긴 정축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정초 한보그룹의 부도로 출발은 좋지 못했다.

한보사태는 부도도미노의 시작이었다.

멀쩡하던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관리종목에 편입돼 어느새
1백개가 넘었다.

시세판은 연일 시퍼렇게 멍들면서다.

주가는 10년전의 수준으로 되돌아 갔다.

투자자들에게는 시련과 아픔의 연속이었다.

97년 한해를 되돌아보며 증권가 10대 뉴스를 간추려본다.

1. 고려증권 동서증권 부도 = 12월5일 고려증권이 부도났다.

금융기관으로선 첫 부도였다.

동시에 증권업계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신호탄이었다.

일주일뒤인 12월 12일 하루하루 콜자금을 막기에 지쳤던 동서증권이
부도를 내고 자진해서 영업을 중지했다.

증권사가 하나 둘씩 쓰러져 가며 증권가의 연말 분위기는 썰렁해지기만
했다.

2.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합의 = 이른바 정축국치다.

달러부족에 시달리던 정부가 12월3일 IMF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기로
했다.

그대신 경제주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내년의 거시경제목표는 IMF가 지시한대로 설정했다.

3. 주가 400선붕괴 = 10년5개월만에 종합주가지수 400선이 무너졌다.

12월1일 주가가 393.16으로 마감돼 지난 87년 6월27일(387.42)이후
10년5개월만에 400선이 붕괴됐다.

IMF구제금융으로 인한 재정긴축과 금융권에 대한 가혹한 구조조정우려로
주가는 폭락했다.

증시의 10년역사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4. 상장기업 연쇄부도 = 97년 한햇동안 무려 65개 상장기업이 부도 또는
영업정지됐다.

5일에 1개꼴로 부도난 셈이다.

이에따라 1월10일 태영판지부터 12월16일 신풍제약까지 79개 종목이
관리대상종목에 편입돼 관리종목수는 무려 1백4개사 1백29개 종목으로
늘어났다.

5. 환율 1천원 돌파 및 금리 20%대 진입 = 주가의 결정적인 변수인
환율과 금리가 폭등했다.

환율은 11월19일 1,012.8원을 기록하며 달러당 1천원대 시대를 열었다.

실세금리인 회사채의 유통수익률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2월8일 전일보다 3%포인트나 오른 연 22.95%로 마감돼 지난 82년1월이후
16년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6. 주가지수 옵션시장 개설 = 7월7일 주가지수 옵션시장이 개설됐다.

지난해 5월 개장된 주가지수선물시장과 함께 증시선진화가 성큼 이뤄진
느낌이다.

그러나 선물과 옵션의 주문시스템이 불안하다는 지적이 많아 개선의
여지는 남아있다.

9월1일 증권거래소의 수작업매매가 마감된 것도 진일보한 것이다.

거래소시장을 상징하던 육각플로어도 없어지고 일일이 호가표를 전달하는
시장대리인도 없어졌다.

7. 담보부족 및 깡통계좌 속출 = 11월말부터 담보부족계좌와 깡통계좌가
크게 늘어났다.

연일 기세하한가로 치닫는 중소형주때문에 신용투자자들의 손해는
커지기만 했다.

12월2일 담보부족계좌수는 4만8천4백개(부족금액 4천2백60억원)에
달했다.

담보비율 1백%미만인 깡통계좌도 1만9천4백24개(부족금액 2천9백
97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8. 명예퇴직 및 성과급제 실시 = 명예퇴직의 한파가 몰아쳤다.

대우증권 산업증권등을 시작으로 증권거래소도 직원을 중도에 하차시켰다.

모 부장은 10억원 가까이 챙겨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명퇴자는 그래도 손에 쥔게 있었다.

IMF 구제금융으로 실업위기를 맞는 증권맨들의 마음은 착잡할 뿐이다.

그러나 하반기부터 대우 대신 동양 동원등이 성과급제를 본격화하면서
억대연봉자가 회사당 10명내외나 탄생했다.

D증권의 모대리는 연간 10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9. 레이디가구 허위공개매수사건 =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중원 두양산업 대성주유기등이 레이디가구주식을 주당 8만원에 공개
매수하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10월31일 증권관리위원회는 중원의 실질경영자인 변인호등을 허위
공개매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11월25일 검찰의 수사결과발표는 더욱 놀라웠다.

변인호씨등이 은행과 대기업을 상대로 3천7백억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10. 증권사 고수익단기상품(CP,RP) 취급 = 지난 8월29일 증권사도
기업어음(CP)을 취급할 수 있게 됐다.

비록 5억원이상 5천만원단위로 제한됐지만 3개월만인 지난 11월말에
할인잔액이 7조7천5백25억원에 달했다.

환매조건부채권(RP)도 올들어 단기고수익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 최명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