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큰 폭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이날 형성된 환율은 매매기준율을 훨씬 밑도는 달러당 1천3백50원-1천5백원
수준.
개장직후 ''팔자''주문 수준이 낮아지면서 1천4백원에서 거래를 시작, 최저
1천3백50원까지 밀리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에따라 외국환 취급은행들도 고객들에게 달러화를 팔때 적용하는 현찰
매도율도 1천7백42원대에서 1천5백5원대, 또 1천4백52원으로 세차례나
재고시했다.
1천9백원까지 올랐던 싱가포르 등의 역외선물환(NDF)시장의 1년짜리
선물환율도 하루만에 1천7백원대로 뚝 떨어졌다.
환율수준에 관계없이 달러거래가 가능토록 만들어 시장기능 활성화와
환율안정을 동시에 꾀하겠다는 의도는 보기 좋게 과녁을 맞춘 셈이다.
그러나 시중의 외화자금 사정은 여전히 빠듯, 외환시장 안정세가 얼마나
이어질지 관심이 높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이날의 환율안정세 요인으로 "장농속 달러"를 들고
있다.
변동폭이 없어진 상태에서 개인들이 시장에 내놓은 달러화가 공급요인으로
작용, 안정세가 두드러졌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개인들의 달러매도는 전일부터 두드러 지고 있다"며
"이는 시장내 환투기 심리가 사라지고 있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기업체들의 네고물량(원화로 환전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내놓는 달러화 수출대금)도 나오고 있다.
외국계은행 딜러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환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선물환을
많이 팔고 있다"며 "환율이 단기 고점을 형성했다고 판단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환율 자유화로 시장내의 투기심리는 진정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적지 않은 딜러들은 시장이 안정세에 진입했는지에 대해선 의문
부호를 표시하고 있다.
시장내 환투기 심리가 사라진다고 해서 수급여건까지 개선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최근 시장에 나오는 달러화는 상당규모가 장농속
달러여서 공급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의문"이라며 "이날의 환율은 바닥
다지기 경향으로 해석해야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해외차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서 IMF측의 공급할 자금의 규모나
시기가 불투명한 점도 여전히 불안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더 나올 "장농속 달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외화유동성에 대한 위기의식
이 또다시 번질 경우 수요초과는 불가피한 탓이다.
외환당국이 강력한 시장개입을 천명해 오곤 있지만 "실탄", 즉 외환보유고
확충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누구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수급여건을 감안할 때 대선이 끼어 있는 이번주가
큰 고비"라며 "당선자가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