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지원이 시작된 후에도 금융위기가 계속되면서
기업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외국인들의 적대적 M&A(인수.합병)도 내년부터는 사실상 전면 허용돼
기업들은 "부도방지"와 "경영권 방어"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한화그룹이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작업은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남들이 "무서워하고" 있는 외국인들과 손을 잡고 기업경영구조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효율적인 것이면 택했던
덩사요핑의 "흑묘백묘"논리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한화는 최근 내년부터 주식매입한도가 55%로 높아진 외국인들이 본격적인
"기업사냥"에 나서기 전에 평소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합작선 등 외국
초우량 업체들과 자본참여 등 전략적 제휴를 발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주력계열사인 한화종합화학은 지난 9일 매년 흑자를 봐온 자회사
한화바스프우레탄을 1천억여원을 받고 독일 바스프사에 팔고 자본참여를
약속을 받아놓았다.

한화에너지도 다국적 에너지회사를 합작파트너로 영입키로 하고 연내
매듭짓는 것을 목표로 한창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화유통도 첨단 노하우를 배울 겸 선진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화증권은 자기자본 충실도를 높이기 위해 일본이나 유럽계 금융기관의
출자를 추진, 앞으로 2대주주로 영입한다는 계획이다.

증시가 살아나면 외국금융기관을 대상으로 5백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도 실시할 계획이다.

한화투자신탁은 이에 앞서 미국의 대형투자신탁회사인 얼라이언스사에
지분 60%를 매각했다.

한화의 이같은 전략은 다소 생소한 게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기껏 키워놓은 회사를 외국인의 손에 넘기는 것을
국부의 유실로 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볼 때 이런 거부감은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게
한화의 판단인 셈이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한화의 이런 판단은 타당해 보인다.

우선 국내 기업들이 자력으로는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흑자인 상황에서도 부도가 나는 현실에서 경영권 안정을 위한 지분율
확대는 차후 과제로 밀릴 수 밖에 없다.

돈이 많았도 마찬가지다.

우리 기업들은 <>자사주 취득한도 제한 <>총액출자한도제한 등 규제에
묶여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이런 상황에선 "살아남는 것"을 지상과제로 하는 기업이 외국인의 돈이라고
해서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화가 거부감을 억누르면서 선진업체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위기를 확실히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는 또 그룹이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경영혁신운동인 "혁명적인 개혁"의
1차개혁과제와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바로 "앞으로 고부가가치 신규사업 진출 기반 마련을 위해서 불필요한
사업부문은 조속히 정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의 국적은 상관할 게 없는 것이다.

한화의 이같은 전략이 독특한 비법은 아니다.

해외의존도가 큰 H, K그룹등도 주력계열사의 지분을 합작선이나 거래선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가 좋을 경우 한화의 전략이 경영권방어전략의 모범답안으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어려울 때 외부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아 훗날을 기약하는 한화의
"권토중래" 전략이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