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기획전과 활발한 국제무대진출등 연초 의욕적인 출발을 보였던
미술계는 경기침체와 대선정국을 비롯한 갖가지 악재로 우울한 가운데
한해를 마감했다.

불황의 여파로 작품가가 내린데다 거래까지 부진, 화랑가에는 1년내내
썰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여기에 전시장의 관람객도 크게 줄어 미술계는 그야말로 힘든 한해를
보냈다.

올해의 경우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고미술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제2회
광주비엔날레 개최, 세계 유수아트페어 참가, 국내외 유명작가들이 참여하는
풍성한 기획전등 미술시장이 전반적으로 활성화될수 있는 요인들이 많았다.

이에따라 미술계는 계속된 불황에서 벗어나 올해는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계속된 불황은 미술시장의 가장 큰 고객이었던 기업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다.

이에따라 매출이 떨어진 화랑들은 자구책 마련을 위해 아트상품 판매,
환경조형물 수주등에 앞다퉈 나서는 등 사업다각화를 활발하게 모색했다.

또 일부화랑에서는 케이블TV 혹은 자체기획 세일을 통한 할인판매에 나서
유통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우울한 가운데 미술활동의 대내외적 성과는 비교적 괜찮았다는 평가다.

대내적으로는 현대미술의 정체성 확립에는 다소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2회째를 맞은 광주비엔날레가 질적인 면에서 한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년에 보기 힘들었던 대형기획전도 많았다.

특히 한국경제신문사가 새사옥 준공을 기념,마련한 "피카소미공개작품전"은
1만6천여명의 관람객이 입장, 대성황을 이뤘다.

피카소의 생애 마지막작품을 포함, 드로잉 1백6점을 한꺼번에 선보인 이번
특별전은 한국팬들에게 모처럼 거장의 진면목을 보여준 화제의 전시였다.

이밖에 호암갤러리의 "금속유물특별전" "한국고미술대전" "청전
이상범전"과 예술의전당이 개최한 "고대이집트문명전"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와 달리 많은 기획전들이 비슷한 발상으로 뚜렷한 차별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즉흥적 발상에 의한 가벼운 기획전이 많았다는
비판의 소리도 높았다.

해외작가전도 활발하게 열려 프랑스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를 비롯 옵티컬아트의 대가 소토, 독일의 로제마리 트로켈, 영국의
현대조각가 토니 크랙, 미국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의 대표작가인 조안
미첼과 바스키야의 전시회가 마련됐다.

해외에서는 세계적인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에 우리작가들이 대거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재미작가 강익중씨가 제47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했고,
서세옥 최종태 조덕현 전광영씨등이 시카고 바젤등 주요 미술견본시에서
한국미술의 성가를 높였다.

또 이종상 이대원 임옥상씨등이 구미 유명미술관의 초대를 받아 호평을
받았다.

미술품에 대한 종합소득세 부과와 연건평 1만평방m이상의 건축물 신축시
건축비의 1%를 미술품구입에 쓰도록 규정한 문예진흥법의 개정문제를
둘러싼 미술계와 관계당국의 대립등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도
많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미술계의 숨통을 죄는 이러한 법안들은 미술인들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결국 종소세 부과는 3년간 유예, 1%법은 0.7~0.5%로
하향조정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백창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