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사실상 "국가부도"를
자인하게 되자 여기저기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차입경영으로 무리하게 몸집만 키워오다 부도를 내 경제에 주름살을 지게
한 기업들을 탓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무능한" 정부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경제규모가 이미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한 정부가 상황을 이 지경까지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비난은 특히 재정경제원에 집중되고 있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통합한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위기앞에 무력
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까지만 해도 금융위기를 해결하기는 커녕 "금융대란은 절대로
없다"며 기업들의 경고를 "엄살"쯤으로 낮춰보던 재경원이었다.

원망의 화살은 청와대 비서실이라고 해서 비켜가지 않는다.

전경련은 청와대 비서실로 대표되는 현재의 국정자문체제는 한마디로
"무질서"라고 진단한다.

수석비서관이 지나치게 많아 관할 경쟁이 불가피하고, 비서실장과 일부
수석비서관간의 알력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을 단다.

수석비서관과 관계부처장관의 주도권 경쟁도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마디로 재경원이나 청와대나 경제위기를 해결할만한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개혁목표로 제시하는 전경련은 그래서 재경원
축소를 포함한 정부부처의 통폐합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우선 재경원 기능의 축소문제.

전경련은 경제기획원보다는 재무부 성향을 이어받은 재경원은 글로벌시대에
부응하는 경제개혁을 주도하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정책조정을 이루어나가기에
부적격하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새 정부는 이 "공룡부처"의 몸집을 줄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방향은 과거 재무부 기능을 줄이고 경제기획원의 성격을 강화하는 것으로
잡고 있다.

대외지향성 개혁성향 개혁추진력 등을 갖춘 부처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설의 경우엔 수석비서관을 7명정도로 축소하라는게 전경련의
주문이다.

의전과 공보 등 순수비서실 기능을 하는 곳과 정무 외교안보 경제 사회복지
행정 등 부문에만 두면 된다는 것이다.

총무수석은 비서실장 소속 1급직으로 낮추고 민정수석과 농수산수석은
각각 행정수석과 경제수석실에 통합하라고 제안한다.

전경련은 이밖에도 통상산업부 기능을 조정하고 농림부 중소기업청 조달청
건설교통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의 업무에 대한 대폭적인 지방이양과 민영화
를 촉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는 없는 공보처를 폐지하고 국가보훈처도 국무총리실의
보훈의전관 정도로 줄이라고 지적한다.

내부부와 교육부의 기능은 지방자치시대에 걸맞게 과감히 지방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기구 및 조직정비는 공무원 인력축소를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1년전인 92년 82만명이던
공무원수가 올해의 경우 93만명으로 11만명이 늘어났다.

현 정부의 "작은 정부"개혁이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경련은 부처통폐합 작업에 정부가 의지만 가지면 공무원수 축소는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공무원 조직축소와 인력감축에 따른 기능보완 문제는 민영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경련은 현 정부들어 민영화 실적이 매우 부진하다고 비판한다.

94년엔 대상공기업 49개 가운데 13개 기업만이 민영화를 완료해 계획대비
약 26.5%라는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95년에는 경영권 이양 대상인 국민은행과 남해화학의 일부 주식 매각과
주택은행이 정부출자기관으로 전환하는데 그쳤다.

특히 96년에는 단 한건의 민영화 실적도 올리지 못했다.

전경련은 민영화부진의 원인을 <>선출직 공직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민영화 계획의 자의적인 변경 <>공무원의 민영화 추진체계에 대한 독점
<>이익집단의 반발 등을 들고 있다.

전경련은 이의 개선을 위해 지금의 "공기업 경영구조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고 대신 "민영화촉진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주장한다.

이 법에 따라 민영화추진 위원회를 설치하고 민영화 참가자격 제한을
금지하면 민영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경련은 부처 통폐합과 인원축소 민영화 등을 통해 "작은 정부"를
구현하면 정부부문의 생산성은 자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재정과 조세 부문의 대폭적인 정비만 더해지면 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재정운영에 있어서는 기업회계식 발생주의 예산제도를 도입할 것을 권고
하고 있다.

정부활동의 손익에 대한 정확한 측정과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98개에 이르는 각종 특별회계 및 기금의 통폐합도 필요하다고
전경련은 지적한다.

올해의 경우 예산규모는 71조4천억원에 불과하나 22개 특별회계 및 76개
기금의 규모는 모두 1백12조9천억원에 달하고 있다.

또 복잡한 조세제도를 단순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특히 법인세율을 법인종류나 이익규모에 관계없이 단일화할 것을 전경련은
요구하고 있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