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껴안고 갈수는 없다"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드디어 "사람" 인력조정에 나섰다.

채용규모 축소로 시작된 사람줄이기가 임원 감축의 차원을 넘어 "직원
내보내기"로 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작업의 핵심과제인 인력슬림(slim)화의 신호탄이 터진 것이다.

한라중공업은 25일 비상경영체제 돌입을 선언하면서 현재 7천명인
임직원수를 3천5백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한라는 우선 명예퇴직자와 자연감소로 인원을 어느 정도 줄인 후
정리해고를 단행할 계획이다.

한화그룹도 이미 올들어 임원의 30%(1백명)와 직원의 8%(1천5백명)을
줄인데 이어 계열사별로 조직 및 인원슬림화를 계속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이달초 임원 30%를 줄인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인원슬림화
작업을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대부분의 그룹들과 기업들도 경비절감과 투자규모축소에 이은
경영혁신조치로 조직 및 인력슬림화를 추진하고 있어 직원 내보내기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이미 이들 기업들은 임원 정원과 신규채용 규모는 10~20%는 기본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놓고 있는 상태다.

대량해고 시대가 바로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이에 따라 현재 2.6%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업률이 내년에는 4%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또 해고규모와 절차,퇴직금 산정기준 등을 둘러싼 노사간 마찰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업들이 이처럼 인력축소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의
IMF(국제통화기금)구제금융신청에 따라 내년에는 초긴축 경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경영악화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줄이지 않고는 기업 자체가
쓰러질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다.

노사간 갈등에 다른 피해를 각오하면서도 기업 생존을 위해서는 인력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절박한 인식이 우리기업전반에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까지 국내 기업들은 외형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불요불급한 인력도
사업확대에 대비해 껴안고 있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여기다 정리해고가 도입된지 채 1년이 안됐고 그것도 시행은 2년 유예된
상태여서 경영상 이유로 인한 슬림화 작업에 법적 걸림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를 앞두고 투자마저 줄이는 상황에서 현재의 인원으로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자 "팔다리"를 잘라내기 시작한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6%대인 성장률이 내년에는 4%대로 떨어질 것이 분명한
만큼 기업들이 평상 체제로는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라며
"경기악화에 따른 고용불안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강제 통폐합 조치에 따라 금융기관의 정리해고와 이에 따른
임직원들의 실직사태가 발생하면 정리해고 도미노가 제조업체에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김영배 경총상무는 "국내 기업은 현재도 20~30%정도의 유휴인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기업들이 보수적인 경영에 돌입할 내년에는
대량해고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