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환율의 폭등은 증권시장의 불안과 더불어 금융대란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외환시장과 증권시장이 핑퐁을 치듯이 상승작용을 이루며 서로를 악화시키고
급기야 한국경제의 총체적인 대외 지급능력을 뿌리에서부터 위협하고 있다.

환율의 비정상적인 급등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대외거래는 물론 이미
1천1백억달러를 넘어선 대외채무에 대한 원리금 부담과 평가손누적을 불러와
경제 안정에 악성 종양처럼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태국과 홍콩 등 동남아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의 본질이 외환위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증권시장의 폭락보다 외환시장의 불안은 우리
경제에 더욱 치명적인 문제를 제기할 것을 우려된다.

최근의 시장 상황은 이런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당초 외국인의 지속적인 주식매도로 촉발된 달러 매입 열풍은 이제 일반인
들에까지 광범한 투기세력들을 형성해 놓고 있다.

최근 한달만해도 이미 5% 이상 원화가 절하되고 있고 지난 28일이후에는
환율이 가격변동폭까지 뛰어오르면서 아예 거래마저 끊긴 상황이다.

투기심리가 강해지면서 달러화를 내놓는 사람은 없고 환율은 하루중 오를데
까지 올라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결국 결제용 달러가 필요한 기업들은 실수요증빙서류를 갖춰 한국은행으로
부터 배급을 받는 지경이다.

증권시장이 다소간 안정을 찾았던 29일에는 전장초반께 이미 가격제한폭까지
치솟는 채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파국 일보직전까지 치달은 외환위기의 배경에는 물론 원화의 실질실효 환율
이 과연 적정선인가 하는 논란도 있다.

그러나 기아사태 이후 급격한 하강추세를 그린 대외신인도의 하락과 연쇄
부도 외국인들의 주식매각대금의 유출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책당국의 환율 관리에도 상당한 실패와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29일에야 부랴부랴 강경식 부총리 이름으로 외호나시장 안정책을
내놓았지만 그동안에는 폭등하는 원화환율을 방어하는 방법론을 둘러싸고
한은과 재경원이 대립하는 등 일정한 기준조차 세우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한보 샅 직후 어느정도의 환율 상승은 용인해두는 지혜가
필요했었지만 대달러환율을 지나치게 빠른 9백원선에서 방어선을 쳤던 것도
이후 걷잡을수 없이 환율 방어 체계가 무너진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29일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외환시아 의 안저에는 상당한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기업들의 현금차관 범위를 확대한 것이나 외자 도입의 길을 다양하게
터놓은 점은 국내 금리의 안정등에도 일정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잇다.

그러나 원화의 달러 환율이 아직 적정선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어서 환율 급등이 이번 조치로 곧바로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보는
외환 딜러들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외국인 주식 투자자금의 유출은 좀터 지켜봐야한다는 경계론이 아직
만만치 않다.

이미 1조원 이상 주식을 팔아치운 외국인들이 모간스텐리등 해외증권사들의
주장대로 아시아 시장에서 계속 철시 행보를 계속해 간다면 외환 위기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수도 있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외환딜러들은 따라서 당분간 외환정책의 우선순위는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데 두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원화값이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과 동행하는 만큼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성도 되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외국자본 유출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 박기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