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베어링증권 서울지점의 강헌구 영업담당이사.

뉴욕 런던 홍콩에서 폭주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주문을 처리하느라
하루하루가 눈코뜰새 없다.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나고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오전 7시30분 출근.

평소같으면 밋밋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머릿속을 느긋하게 정리한다.

최근 외국투자자들의 매도공세가 시작되면서 이런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머리끝까지 온신경이 곤두선다.

국내외 긴급메시지부터 챙긴다.

아주 급한 사항은 일분일초라도 늦지 않게 외국투자자에게 타전한다.

아침회의가 끝난 9시~10시.

전화 팩스에 불이 난다.

매도주문이 쏟아져 들어온다.

매도하고자 하는 종목의 조그마한 특이사항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해외주식매담당자들과 밀고 당기는 입씨름이 오간다.

3시~3시30분.

장마감을 앞두고 이런 전쟁을 다시 한번 치른다.

분명 보통때와는 다른 "활기찬" 분위기다.

그러나 강이사는 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퇴근시간도 6시에서 한시간가량 늦춰졌다.

같은 시간대 쟈딘플레밍증권 서울지점의 이승훈 영업과장.

"죽을 맛이군"

최근 들어 이과장은 하루에도 몇번씩 이 말을 내뱉는다.

10~15개종목, 금액상으로는 1백50억~2백억원어치가 하루팔자물량으로
나온다.

평소에는 어림도 없는 금액이다.

이과장은 요즈음 점심시간이 따로 있는지조차 까먹었다.

외국인들의 매도주문을 받아내자니 어쩔수 없이 자리에 붙박이로 앉아
있어야 한다.

시간대가 다르니 밤8시나 9시에도 사무실에 남기도 한다.

"더 팔고 싶은데" 이쪽 사정이 어떠냐는 외국인들의 요구에 답해야 하는
탓이다.

"외국인들이 이렇게 팔아치우다간 내년께는 할 일이 없어지는게 아닌가"

"꼭 외국인투자자들의 앞잡이같군"

퇴근무렵 이과장의 걱정거리다.

< 김홍열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