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의 레이디가구 공개매수는 증권감독원의 허상을 확인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만 하다.

공개매수과정이 허점투성이였건만 주식시장의 심판관은 허수아비로
일관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중원 등 3개사가 레이디가구 경영권확보를 위해 공개매수신청서를
증감원에 내놓고서도 "자금이 없다"는 이유로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의
대금지급기일을 무단으로 연기해 버렸다.

문제는 이런 일이 예견됐음에도 증감원이 무신경했다는 점이다.

중원은 지난 3년간 연속적자를 냈고 지난 4월에는 1차부도를 냈던
기업이다.

더우기 8월에는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여러 정황으로 볼때 중원의 약속이행 여부를 따졌어야 할 증감원은 "구비
서류를 모두 갖추었다"는 형식논리만으로 공개매수신청서를 수리해 버렸다.

공개매수발표에도 불구, 레이디가구 주가가 폭락하는 등 시장에선 이상한
신호를 내고 있었는데도 감독원만 무신경했다.

약속위반 통고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공개매수불이행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증감원이 엄포를 놨으나 그것도 뒷통수를 얻어맞고 말았다.

"돈이 없다"던 중원은 대금지급연기를 발표한 뒤에도 한솔PCS와 한국통신
프리텔 주식 1백28억원어치를 유유히 매입했다.

이런 약속위반에도 증감원은 속수무책.

증감원의 공신력만 믿었던 "순진한" 투자자들만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약속위반자를 응징할 마땅한 수단이 없으니 법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는
증감원의 항변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미리미리 방책을 세우는 것은 공기관의
기초적인 임무다.

그런 것조차 소홀히 한 채 "법에 의한 보호"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증감원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현승윤 < 증권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