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컬렉션 가이드] '미래의 예술' .. 비디어아트 각광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미래의 예술, 하드웨어의 중요성 미래의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정말 예술은 죽게 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작가나 비평가, 화상, 컬렉터 모두에게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렇다할 비전이나 분석은 없는 것 같다.
미래를 예측하는것이 맞추기보다는 빗나가기가 쉬운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리고 지금의 예술적 상황조차 너무 복잡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어 미래에
대한 언급은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미래는 여전히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더욱이 날이 갈수록 예술의 경쟁은 나라 간에도 치열해져 이제 국가도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래의 예술에 대한 전망도 미래의 경제 전망못지 않게 중요한
사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문화예술 학술행사 혹은 매스컴에서도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예언과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앞으로 우리 인류사회가 예술에 대해 갖는 기대치를 오늘의 상황에
비춰보아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의 예술이 안고 있는 딜레마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감동과 재미가 없다.
어찌 됐든 소설이 현실보다 감동도 재미도 없을 때 글쓰기란 외면당한다.
오늘의 미술도 교훈과 감동과 재미 면에서 광고만큼도 없다고들 말한다.
둘째는 여전히 예술은 닫혀 있다.
아직도 예술은 공간과 제도 등에서 권위를 고집하고 있으며 폐쇄되어
있다.
사회의 바람직한 규범이나 비전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서도 정작
폐쇄되고 경직되어 있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예술은 오늘도 그렇지만 내일도 대중화라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상된다.
더러는 예술의 대중화란 이론적 망상이자 허구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직도 예술의 권위와 고급 취향이 고수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근대까지만 해도 예술의 가장 큰 라이벌은 바로 과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예술안에 있는 세속적인 것의 아류, 즉 대중예술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중예술이 오늘의 고급예술 혹은 엘리트예술에
너무나 벅찬 상대가 돼 버린게 현실이다.
물론 이러한 자각은 이미 팝아트 작가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양식의 유희에 빠져 "대중미술"로의 팝아트는
실패한다.
오히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현실적 대중미술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소프트웨어가 중시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예술이 전통적으로 그러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하드웨어가 없다는 것 아닌가.
이 하드웨어를 기껏 고답적 공간에서의 전람회 정도로 국한해서는 안될
것이다.
당장 시각 분야만 해도 그렇다.
엄청나게 많은 매체 하드웨어가 산같이 쌓여 있어도 그것을 예술적으로
활용할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없다.
지금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 있는 실험적인 매체작품들과 신촌 로터리
주변 건물들 여기저기에 켜져 있는 광고 전광판들과 시각적인 자극의
강도를 비교해 보자.
우리 주위에 널린 하드웨어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 선화랑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
정말 예술은 죽게 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작가나 비평가, 화상, 컬렉터 모두에게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렇다할 비전이나 분석은 없는 것 같다.
미래를 예측하는것이 맞추기보다는 빗나가기가 쉬운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리고 지금의 예술적 상황조차 너무 복잡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어 미래에
대한 언급은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미래는 여전히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더욱이 날이 갈수록 예술의 경쟁은 나라 간에도 치열해져 이제 국가도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래의 예술에 대한 전망도 미래의 경제 전망못지 않게 중요한
사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문화예술 학술행사 혹은 매스컴에서도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예언과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앞으로 우리 인류사회가 예술에 대해 갖는 기대치를 오늘의 상황에
비춰보아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의 예술이 안고 있는 딜레마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감동과 재미가 없다.
어찌 됐든 소설이 현실보다 감동도 재미도 없을 때 글쓰기란 외면당한다.
오늘의 미술도 교훈과 감동과 재미 면에서 광고만큼도 없다고들 말한다.
둘째는 여전히 예술은 닫혀 있다.
아직도 예술은 공간과 제도 등에서 권위를 고집하고 있으며 폐쇄되어
있다.
사회의 바람직한 규범이나 비전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서도 정작
폐쇄되고 경직되어 있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예술은 오늘도 그렇지만 내일도 대중화라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상된다.
더러는 예술의 대중화란 이론적 망상이자 허구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직도 예술의 권위와 고급 취향이 고수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근대까지만 해도 예술의 가장 큰 라이벌은 바로 과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예술안에 있는 세속적인 것의 아류, 즉 대중예술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중예술이 오늘의 고급예술 혹은 엘리트예술에
너무나 벅찬 상대가 돼 버린게 현실이다.
물론 이러한 자각은 이미 팝아트 작가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양식의 유희에 빠져 "대중미술"로의 팝아트는
실패한다.
오히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현실적 대중미술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소프트웨어가 중시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예술이 전통적으로 그러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하드웨어가 없다는 것 아닌가.
이 하드웨어를 기껏 고답적 공간에서의 전람회 정도로 국한해서는 안될
것이다.
당장 시각 분야만 해도 그렇다.
엄청나게 많은 매체 하드웨어가 산같이 쌓여 있어도 그것을 예술적으로
활용할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없다.
지금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 있는 실험적인 매체작품들과 신촌 로터리
주변 건물들 여기저기에 켜져 있는 광고 전광판들과 시각적인 자극의
강도를 비교해 보자.
우리 주위에 널린 하드웨어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 선화랑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