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친구들과 구슬치기하던 기억을 되살려보자.

당시 유리구슬은 직경 1cm 정도로 거의 크기가 비슷비슷했다.

그러나 그 구슬하나로 할 수 있는 놀이는 참 많았다.

상대방의 구슬을 맞혀서 따먹기를 하거나 다섯개의 홀을 만들어 차례로
집어넣기도 했다.

또 조그마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여러개의 구슬을 동그라미안에 많이
던져넣기내기를 하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구슬치기 놀이자체가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 바람에 구슬을 만드는 업체도 없어졌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유리구슬을 생산하는 업체가 남아 있다고 하면 누구든
놀랄 것이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주식회사 세호가 바로 그런 놀라운 회사.

세호도 한때는 놀이용 유리구슬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회사의 강신종사장은 유리구슬의 독특한 기능을 차츰
깨달아가면서 유리알의 지혜에 매료됐다.

첫번째로 유리구슬의 굴절률에 마음이 끌렸다.

그는 이 굴절률을 활용하기로 다짐하고 여러가지 응용법을 고안해봤다.

우선 유리구슬의 직경을 다양하게 만들어봤다.

직경 1mm수준까지 만들었다.

이를 도로표지선을 긋는 도료에 섞었다.

요즘 야간에 전조등을 켜고 운전하면 중앙선이 환하게 반사되는 것은
바로 세호가 개발한 유리알을 섞은 도료를 사용한 덕분이다.

지금 전국에서 도로의 중앙선을 그을 땐 한결같이 이 회사의 유리구슬을
타서 쓴다.

유리알의 이런 기능에 자신을 얻은 강사장은 유리구슬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제품이 없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심했다.

특히 유리알의 크기를 다양하게 만들어보는데 온힘을 기울여 작게는
0.5mm 에서 미크론 단위로 까지 작게 내려가봤다.

그러자 밀가루나 먼지보다 작은 미립자인 5미크론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지난 95년말 강사장은 이 유리먼지를 합성수지에 혼합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의 순간적인 이 아이디어는 새로운 신소재를 개발하는 기초가 됐다.

합성수지에 유리미립자를 혼합하자 신기하게도 인조대리석이 탄생한 것.

세호는 유리미립자를 응용해 만든 인조대리석으로 요즘 여러가지의
제품을 개발해내고 있다.

벽재를 비롯 바닥재 싱크대 테이블소재등 30여가지 소재를 개발,
건설업체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기업에서 컴퓨터실을 따로 마련하면서 바닥재를 인조대리석으로 까는
유행을 창출해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강사장이 새로 유리알을 활용해 첨단제품을 만들어낸 제품은
끝없이 많다.

심지어는 사찰에서 향을 꽂는 모래로 활용하는 깨끗한 유리구슬을 개발,
요즘 전국의 사찰에서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아직도 유리구슬을 만드려는 고집을 버리지 않은 강사장을 향해 주변에선
한결같이 그를 설득한다.

이미 구슬치기가 사라진 세상에서 왜 자꾸 유리알만 고집하는거냐고
묻는다.

그래도 강사장은 한우물만을 파겠다는 신조에 변함이 없다.

보통 기업은 변신을 해야 살아남는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러나 주변의 상황을 보면 턱없이 자신과 관련없는 업종을 선택했다가
한두해만에 사라지는 기업들을 자주 본다.

이에 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첨단화하는 방법으로 현명하게
변신하는 기업들도있다.

실제 볼펜껍질을 만들던 플라스틱 사출기술을 발전시켜 항공기 내장재를
만들어냈다.

이제 너무 지나치게 자신이 모르는 분야로 탈바꿈하기 보단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를 첨단화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구슬치기는 사라졌지만 이를 응용한 컴퓨터게임은 살아남을 수 있다.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