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들의 의식구조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회사는 사용자의 소유물이 아니라 종업원 것이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종업원이 있고 나서 회사가 있다는 기존사고 틀이 회사가 살아남아야
종업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의식혁명인 셈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 최근 근로자들이 회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뛰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잘나가는 회사나 형편이 어려운 회사나 마찬가지다.

특히 부도 등 경영파탄을 경험한 기업들의 근로자들은 회사살리기에 두팔
걷고 나서고 있다.

근로자들이 이처럼 구사활동에 열심인 것은 오랜 경기침체로 경영환경이
크게 악화된 탓이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기업의 부도, 명예퇴직 등 감원선풍, 극심한 취업난
등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신조류인 셈이다.

이런 현상들은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자극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근로자들의 결의는 거리로 나가 자사
제품을 직접 파는가 하면 비용절감 생산성향상운동 등 갖가지 형태로 표출
되고 있다.

특히 부도위기에 처한 기업의 근로자들은 대립과 갈등의 노사관계를 완전
청산하고 회사주인이란 의식을 갖고 스스로 불황타개에 나서고 있다.

본사 조사결과 현재 산업현장에서 부도나 경영위기를 극복하기위해
근로자들이 중심이 돼 회사살리기에 나선 업체는 포항의 한합산업 대구의
금성염직 구미의 고려전기와 동국전자부산의 영창섬유 영풍제화 제일중기
창원의 풍성정밀 등 1백여곳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제2창업의 신념으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지난 95년 7월 대형부도로 회생불능에 처한 충북 청주산업단지내 백상타월
의 경우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모두가 잠적해 버렸으나 근로자들이 똘똘
뭉쳐 회사를 살려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근로자들의 노력으로 회사를 일으킨 셈이다.

노조위원장에서 경영진으로 변신한 백상타월의 박천서 사장은 "근로자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면 못이룰게 없습니다.

우리회사도 경영진들이 잠적했을 땐 난감했으나 죽을 힘을 다해 살려보자는
근로자들의 굳은 결의로 상당수준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말했다.

경북구미의 동국종합전자 노조는 공정관리 자재수급 등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등 생산성향상에 앞장서고 있다.

구사운동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은 근로자들이 직접나서 자사제품판매에
나서는 일.

지난해 LG산전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대기업에서 불기 시작한 이런
형태의 불황타개바람은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중소기업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신발제조업체인 부산의 영풍제화는 회사가 부도위기에 처하자 근로자들이
전국공장들을 방문하며 등산화 판매에 나서고 있다.

한양종합목재의 정낙헌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어려운 만큼 노조도 힘을
합치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성과부터 부풀린후 우리몫을 요구해야하는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들기업에서는 지금까지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던 임금인상요구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아예 임금동결을 선언하거나 임금인상을 회사측에 위임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오직 회사회생을 위해 구슬땀을 흘릴 뿐이다.

회사에 근로의 댓가를 요구할 하는 대신 경영정상화방안마련에 머리를
짜내고 있다.

노와 사가 따로 없다는 노사불이의 정신이 현장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부의 전운배 노사협의과장은 장기간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현장에서는 대립적 노사관계 대신 회사살리기에 나서는 노사의 협력적
모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신화를 재창조중인 이들 칠전팔기의 기업들은 분명 기아사태등으로
덫에 걸린 한국경제의 소금이다.

< 윤기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