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지원없는 화의나 법정관리중 기아가 알아서 선택하라는 채권단의
결정이 내려진 26일 오후 기아그룹은 당혹해하면서 일단 2~3일만 기다려
보자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기아자동차노조가 이날 전면 파업방침을 결정함에 따라 기아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을 가능성도 높다.

이날 채권단의 결정은 기아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라는 마지막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아그룹은 공식반응을 유보했다.

엄성용 기아그룹기획조정실이사는 채권단회의가 끝난 직후 기자들에게
"채권단이 결정한 사항을 공식적으로 통보받지 않았기 때문에 대표자회의
결과를 지켜 본다는게 기아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29일 대표자회의에서 공식적인 방침을 통보해 오면 기아도 뭔가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엄이사는 그러나 지금 당장으로선 화의추진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일단 화의를 밀어붙인다는 얘기다.

기아의 이같은 방침은 기아자동차에 대한 법원의 재산보전처분명령이
금명간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부도를 막아놓고 10월6일까지 시간을
벌면서 최후수단을 강구한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좀더 강도높은 자구노력이나 새로운 자금조달방안 등을 짜내면서 채권단과
협의해 화의를 얻어내보자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법정관리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법정관리는 기아자동차를 제3자에 인수시키려는 시나리오의 한 수순일뿐
이라는 기아측의 의구심은 아직까지 확고하다.

그러나 화의를 전제로 한 기아자동차의 정상화에 필수적인 자금지원에
관해 채권단이 "불가" 방침을 확고히 함에 따라 기아도 벼랑끝에 몰렸다.

자금지원을 받지 않고 기아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신용평가기관의 평가결과 기아자동차는 앞으로 2년동안 4천억원의 자금을
마련하고 부채상환을 5년간 유예받아야만 정상화될수 있다는 것이었다.

은행의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채권단은 기아에 등을 돌린 상태다.

기아가 어떤 탈출구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자동차노조는 전면파업방침을 결정, 기아사태가 자칫
하면 노.정투쟁으로 비화될 소지도 높다.

노조가 29일부터 파업에 들어가면 생산라인가동이 중단된다.

채권단과 기아경영진이 기아처리의 최후방안을 협의하는 와중에 기아사태가
경제문제차원을 넘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기아자동차판매주식회사 종업원들도 이날 기아사옥에 붙인 대자보를 통해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결정할 경우 전직원이 사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아노조의 움직임과 관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자동차산업노조총
연맹도 동조투쟁방침을 밝혔다.

기아측은 노조의 파업결정에 대해 기아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운영될수
있도록 파업결정을 철회해 달라고 노조를 설득할 방침이다.

노조파업이 사태해결에 도움이 안될수 있다는게 기아경영진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가 강경한 입장이어서 기아사태해결이 더 꼬일 가능성도 높다.

채권단이 던진 최후통첩을 기아가 어떻게 받아칠지, 노조의 파업경고속에
향후 2~3일이 기아사태해결의 고비가 될 것같다.

< 고광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