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 김모씨.

중견 회계법인에 몸담고 있는 그는 최근 한국강관 부실감사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후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지난 93년 국내 굴지의 S회계법인에서 근무하던 당시 자신이 감사했던
회사에 대해 의견을 충분히 내지 못한게 내심 마음에 걸린다.

"감사를 했던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았지요.

그래서 한정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 회사의 일감을 따온 파트너로부터
한정의견을 내지 말라는 압력이 들어오더군요.

할수 없이 적정의견을 냈으나 요즘들어 혹시나 부도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김회계사의 걱정은 김회계사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법원이 민법상의 손해배상청구 소멸시효를 적용한후 공인회계사 업계에서
일종의 손해배상 피해증후군을 겪었다.

민법의 손해배상 규정에 의하면 부실감사보고서를 믿고 주식투자를 한
투자자는 감사보고서가 부실이라는 사실을 안후 3년간, 부실감사보고서가
나온후 10년간 손해배상을 청구할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인회계사들도 감사를 하다보면 실수를 할수 있다.

자신이 주의를 소홀히 해서이건 아니면 경영진이 의도적으로 어두운 부분을
밝히지 않던간에 인간인 이상 중요한 부실회계를 간과할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감사가 잘됐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같은 회사내의 다른 회계사나
아니면 공인회계사회 증권감독원 등에서 감리를 하게 된다.

감사인이 감사기준을 지켜 감사를 했는지 한번 더 점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게 문제이다.

김회계사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일감을 따와야 하는 파트너(회계법인의
임원)의 입장을 감안할때 회계법인의 내부통제제도가 제대로 가동될수
없다는게 일선 공인회계사들의 지적이다.

또 아무래도 감사서류만을 살펴보고 감사의 적정여부를 판단해야 하므로
담당공인회계사가 지적해내지 못한 경영자의 의도적인 부실회계를 찾아내기란
힘들다고 이들은 말한다.

일감을 잃지 않기 위해 부실회계를 공공연히 눈감아주거나 아니면 경영자의
눈속임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란 설명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증권감독원에서 감리를 하고 있으나 10%정도만을
표본추출 하다보니 역시 한계가 있다.

특히 올해초까지만 하더라도 기업내용에 관계없이 완전 무작위방식으로
선정해 부도 가능성이 높은 회사들이 감리대상에 선정되지 않는 헛점을
드러냈다.

증감원은 지난 5월 부채비율, 재고자산비율 등이 높은 회사를 우선 선정하는
방식으로 감리대상업체 선정방식을 변경했다.

그러나 감리를 통해 부도를 예고한 적이 아직까지 없어 표본축출방식을
더욱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분식결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회계법인들이 자체적으로 부실감사를 걸럴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당사자들 스스로가 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증권감독원도 일반 투자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공공기관으로서 한계기업들에
대한 감리와 투자자 보호기금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박주병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