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5일새 50포인트나 폭락한 지난 24일 희안한 일이 벌어졌다.
강경식 부총리는 홍콩에서 "주가하락이 가아사태에서 초래된 만큼 별도의
대책이 없다"고 목청을 돋웠다.
비슷한 시간 과천 재경원계자는 한국통신 상장연기를 포함한 갖가지 증시
안정대책을 검토하고 있노라고 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일이 이쯤되면 강부총리가 실언을 한 것인지, 재경원관계자가 눈치없는
일을 한 것인지 종잡기가 어렵다.
도무지 정상적인 정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주가폭락의 원인이 기아이고 게다가 괴씸하기까지 하니 별도대책이 필요
없다는 부총리의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기아사태가 주가폭락의 도화선이 된 것은 분명하나 기아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 혼란과 한국기업 전반적인 신용도추락으로 이어진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연일 자금을 빼가는 것은 환율과 금융
시장 불안에 대한 정부의 관리능력을 의심하기 때문이란 시각도 있다.
초우량기업으로 손꼽혀 온 SK텔레콤이 DR(주식예탁증서)발행에 실패한
것도 국내 주가붕괴와 한국 기업의 신용도 추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불안이 가닥을 잡지 못하는 한 해외증권을 발행해 단돈 2~3억달러라도
조달해보겠다던 나머지 기업들도 줄줄이 차질을 빚게 된다.
기아와 주가문제가 이처럼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으로 확산되고 있는데도
시야를 좁히고 있는 것은 차라리 무책임론자의 자세에 가깝다.
시장의 실패를 막는 것이 정부의 큰 역할 가운데 하나이다.
시장이 실패 조짐을 보이는데도 팔짱만 낀채 시장기능 타령만 하는 것이야
말로 지극히 비시장적인 발상이다.
허정구 < 증권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