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비롯해 많은 문화재를 갖고 있는 만큼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는 문화예술 행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흥진(53) 종로구청장은 "서울의 심장부 종로를 예술의 향기가 넘치는
"문화구"로 가꾸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21세기에는 문화경쟁력에서 모든 승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외형성장의 "몸집"과 함께 내면성숙의 "정신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문화예술 아이디어 모집을 정례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에게는 별명이 많다.

"아이디어 구청장" "25시 구청장" "문화구청장".

민선자치 2년동안 구민들에게 가장 많은 감사패를 받은 구청장으로도
이름나 있다.

그는 또 끊임없는 아이디어로 복지행정을 이끌어 올해 일본 "국제창의상"
수상자 후보에 올라있다.

그는 취임하자 마자 구청 공무원들의 명함에 인물사진을 컬러로 인쇄토록
해 "얼굴명함"을 처음 도입했다.

민원인들과의 "살아있는 대화"가 가능토록 하자는 뜻에서다.

도심재개발이 가장 활발한 곳도 종로.

고층빌딩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자칫 삭막해지기 쉬운 도시환경을
"문화예술의 숲"으로 감싸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스스로 문화예술 현장을 찾아 대학로와 세종문화회관 문화사랑방에서
두차례 시낭송을 갖기도 했다.

이같은 그의 활동은 다른 자치단체에서 아이디어를 실용화할 때
"종로구에서는 어떻게 했나"라고 물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별다른 비결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공무원과 구민들을 함께 묶는 "가족개념"이 주효한 것.

그래서 그는 "궁합이 잘 맞는 구청장"으로 불린다.

야당 구청장 (국민회의 소속)으로서의 어려움도 많았다.

청와대를 비롯한 중앙부처들이 바로 곁에 있는데다 "행정경험이 없는
인물"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등 초기엔 그야말로 "발목에 쇳덩이를 달고
뛰는" 심정이었다고.

"관료 출신들의 시각은 "안"에 머물기 쉽지만 정치쪽에서 잔뼈가 굵은
저는 "밖"을 함께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구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게 됐죠"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