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대한 한국은행의 집단반발
과 관련, 정부가 한은을 상대로 감사권 및 검찰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자 한은의 노동조합 및 직원들이 크게 저항하고 있다.

한은 직원들은 "힘의 논리로 잘못된 중앙은행 제도를 그대로 관철시키려는
처사는 공권력의 남용일 뿐 이해될 수 없는 처사"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19일로 철야농성 5일째인 노조측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파업에 들어간다는 기본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다고 못박아 정부와
한은간의 정면대결 양상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부서장 12명 등 총 33명의 직급별 대표로 구성된 "한은법 개악저지를 위한
비상대책회의"의 한 지도간부는 "정부에 책잡히지 않는 선에서 한은법
개악저지 투쟁을전개할 것이며 한은의 기본업무를 소홀히 한다거나 중앙은행
직원으로서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직원들이 바라보는 정부의 공권력 발동 경고는 더욱 냉소적이다.

한 중견간부는 "한은직원들이 투쟁에 몰두한 나머지 중앙은행의 업무가
마비돼 금융시장에 피해가 간다거나 국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면 몰라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규탄집회를 열고 있는 터에 협박조로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특히 직원들이 대의명분에 따라 점심시간을 이용해 모여 의사표시를 하거나
근무시간 이외에 국민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에 대한 노조측의 반응은 더욱 직선적이다.

심일선 노조위원장은 "국회에 상정되기 전에는 관련 법안이 제대로 수정
되도록 최대한 투쟁하겠지만 그 노력이 무위에 그치고 법이 통과될 것으로
판단될 때는 한은 창립사상 처음으로 전면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
했다.

심위원장은 또 "직원 및 조합원들의 투쟁이 국민경제를 수호하고 관치금융
을 막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근로조건 개선 등을 목표로 삼는 노동쟁의
하고는 성격이 다르다"면서 "평화적으로 전개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수호
투쟁에 검찰이 나설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앙은행이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 시중
은행의 한 간부직원은 "정부가 금융개혁 과제로 삼은 중앙은행제도 및
감독체계 개편안은 금융수요자 입장에서는 피부에 직접 와 닿지 않는 사항"
이라고 양측을 비판했다.

그는 "논란이 빚어지는 문제를 굳이 급하게 처리하지 말고 금리자유화 등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금융규제 완화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등
일선 금융계와온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분야 중심으로 금융개혁을 추진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