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상 수상기업 공적내용] 과기처장관상 : '원익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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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칩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1백여가지의 공정을 거쳐야한다.
하나하나의 장비는 미크론미터수준의 정밀성이 요구되며 작업환경은
먼지알갱이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청정성을 필요로 한다.
두 조건은 모두 원천기술을확보하고 있어야 만족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생산규모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하고 있지만 장비만큼은
일본이나 미국등 선진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까닭이다.
8인치 웨이퍼 생산라인 하나를 갖추기 위해서는 1조원가량이 드는데 아직
90%이상을 외국브랜드가 찍힌 장비를 수입해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최근들어 기술력으로 무장한 중소기업군단에 의해 공정별 장비 및
핵심부품의 국산화가 잇따르면서 반도체와 관련한 기술의 완전자립 가능성을
밝게 하고 있다.
원익석영은 우리나라가 일궈낸 반도체신화의 의미를 깊게한 업체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반도체생산용
쿼츠웨어의 국산화를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석영으로 만드는 쿼츠웨어는 웨이퍼 가공공정 중 주로 확산과 산화공정에
사용되는 핵심부품의 하나.
식스 나인이라 불리는 99.9999%의 순도를 유지하고 섭씨 1천3백도~
1천6백도의 고온에서도 변형없이 견딜수 있게끔 만드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돼 기초기술기반이 닦인 선진국만이 생산가능한 부품으로 여겨졌었다.
원익석영이 세워진 때는 지난 83년.
원자재공급업체인 미국 GE와 손잡고 본격 출범했다.
GE와 독일 WOS 등에 기술진을 파견해 샘플분석부터 착수했다.
상당부분이 경험에서 비롯되는 육감을 바탕으로 수작업에 의존해
만들어야하는 쿼츠웨어의 특성상 선진업체에의 인력파견을 통한 노하우
축적이 최우선 과제였다.
10여명의 기술진 모두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신념으로뭉쳤다.
그결과 단기간에 반도체 미세회로 가공시 반응관으로 사용되는 쿼츠튜브
(석영관)와 쿼츠튜브에 웨이퍼를 적재하는 용도의 쿼츠보트(석영보트)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국내 반도체업계로부터 품질을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84년에는 매출이 5백만원에 불과했다.
이듬해에는 1억5천만원으로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기술개발로 품질을 높이고 생산능력을키우는데 주력했다.
86년 기술선을 일본의 동경석영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생산확대 결정은 그때까지만해도 모험이었지만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다.
그해 3억원의 매출을 올려 흑자로 돌아섰고 수입대체효과는 눈에 보이게
커갔다.
87년 이용한사장(43)이 이끌게되면서부터 원익석영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졌다.
"반도체시장이 확대되면서 관련장비의 국산화요구가 커질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기술제휴선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면서 독자적인 기술개발노력에 더욱 힘을
쏟았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외국기술과 장비에 전적으로 의존해야하는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뼈대를 튼튼히 한다는 목표를 갖고 오기로 맞섰지요.
젊다는게 뭡니까"
원익석영의 끊임없는 기술혁신 노력은 주문확대로 되돌아 왔다.
매출곡선은 급상승세를 탔다.
88년에 전년대비 2배나 많은 18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89년에는 30억원을
헤아렸다.
90년대들어서는 더욱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92년 51억원에서 지난해에는 2백억원선을 돌파, 국내시장의 40%를
점유했다.
올해에는 수출을 포함해 3백4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내년에는 4백50억원, 그리고 99년에는 5백억원선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쿼츠보트의 경우 일본에서 개당 7천만원에 수입되는 것을 3천만원에
공급할수 있는 기술기반을 갖춰논 덕택이다.
원익석영은 반도체산업의 발전에 발맞춰 12인치 웨이퍼가공용 쿼츠웨어
개발에 주력하며 또 한차례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2백56메가D램이 양산단계에 들어갔지만 곧 1기가D램으로 건너뛸 가능성이
큽니다.
그만큼 반도체 기술개발속도가 빨라지고 있지요.
이에 대비하기 위해 2백56메가D램은 물론 1기가D램 제조공정에 맞는
쿼츠웨어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원익석영은 또 우리나라 반도체업체의
해외진출추세에 따라 해외현지생산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대만에 대만원익석영(지분 51%)이란 합작회사를 차린데 이어
미국에도 생산거점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영국 웨일즈에도 생산라인을 갖춘다는 구상아래 타당성을 검토중이다.
이와함께 현재 GE로부터 전량 수입하고 있는 석영원자재의 국산화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코스닥에 등록신청했고 올해중 국제품질인증규격인 ISO9002
인증도 따낸다는 계획이다.
"기업은 고객을 위해 존재합니다.
고객으로부터 신뢰성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술개발 노력이
필수적이지요"
이사장은 국내 쿼츠웨어시장 점유율 1위란 1단계 목표달성에 만족하지
않는다.
세계최대의 쿼츠웨어 생산업체란 2단계 목표를 위한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오직 기술력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7일자).
하나하나의 장비는 미크론미터수준의 정밀성이 요구되며 작업환경은
먼지알갱이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청정성을 필요로 한다.
두 조건은 모두 원천기술을확보하고 있어야 만족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생산규모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하고 있지만 장비만큼은
일본이나 미국등 선진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까닭이다.
8인치 웨이퍼 생산라인 하나를 갖추기 위해서는 1조원가량이 드는데 아직
90%이상을 외국브랜드가 찍힌 장비를 수입해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최근들어 기술력으로 무장한 중소기업군단에 의해 공정별 장비 및
핵심부품의 국산화가 잇따르면서 반도체와 관련한 기술의 완전자립 가능성을
밝게 하고 있다.
원익석영은 우리나라가 일궈낸 반도체신화의 의미를 깊게한 업체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반도체생산용
쿼츠웨어의 국산화를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석영으로 만드는 쿼츠웨어는 웨이퍼 가공공정 중 주로 확산과 산화공정에
사용되는 핵심부품의 하나.
식스 나인이라 불리는 99.9999%의 순도를 유지하고 섭씨 1천3백도~
1천6백도의 고온에서도 변형없이 견딜수 있게끔 만드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돼 기초기술기반이 닦인 선진국만이 생산가능한 부품으로 여겨졌었다.
원익석영이 세워진 때는 지난 83년.
원자재공급업체인 미국 GE와 손잡고 본격 출범했다.
GE와 독일 WOS 등에 기술진을 파견해 샘플분석부터 착수했다.
상당부분이 경험에서 비롯되는 육감을 바탕으로 수작업에 의존해
만들어야하는 쿼츠웨어의 특성상 선진업체에의 인력파견을 통한 노하우
축적이 최우선 과제였다.
10여명의 기술진 모두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신념으로뭉쳤다.
그결과 단기간에 반도체 미세회로 가공시 반응관으로 사용되는 쿼츠튜브
(석영관)와 쿼츠튜브에 웨이퍼를 적재하는 용도의 쿼츠보트(석영보트)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국내 반도체업계로부터 품질을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84년에는 매출이 5백만원에 불과했다.
이듬해에는 1억5천만원으로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기술개발로 품질을 높이고 생산능력을키우는데 주력했다.
86년 기술선을 일본의 동경석영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생산확대 결정은 그때까지만해도 모험이었지만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다.
그해 3억원의 매출을 올려 흑자로 돌아섰고 수입대체효과는 눈에 보이게
커갔다.
87년 이용한사장(43)이 이끌게되면서부터 원익석영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졌다.
"반도체시장이 확대되면서 관련장비의 국산화요구가 커질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기술제휴선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면서 독자적인 기술개발노력에 더욱 힘을
쏟았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외국기술과 장비에 전적으로 의존해야하는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뼈대를 튼튼히 한다는 목표를 갖고 오기로 맞섰지요.
젊다는게 뭡니까"
원익석영의 끊임없는 기술혁신 노력은 주문확대로 되돌아 왔다.
매출곡선은 급상승세를 탔다.
88년에 전년대비 2배나 많은 18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89년에는 30억원을
헤아렸다.
90년대들어서는 더욱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92년 51억원에서 지난해에는 2백억원선을 돌파, 국내시장의 40%를
점유했다.
올해에는 수출을 포함해 3백4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내년에는 4백50억원, 그리고 99년에는 5백억원선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쿼츠보트의 경우 일본에서 개당 7천만원에 수입되는 것을 3천만원에
공급할수 있는 기술기반을 갖춰논 덕택이다.
원익석영은 반도체산업의 발전에 발맞춰 12인치 웨이퍼가공용 쿼츠웨어
개발에 주력하며 또 한차례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2백56메가D램이 양산단계에 들어갔지만 곧 1기가D램으로 건너뛸 가능성이
큽니다.
그만큼 반도체 기술개발속도가 빨라지고 있지요.
이에 대비하기 위해 2백56메가D램은 물론 1기가D램 제조공정에 맞는
쿼츠웨어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원익석영은 또 우리나라 반도체업체의
해외진출추세에 따라 해외현지생산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대만에 대만원익석영(지분 51%)이란 합작회사를 차린데 이어
미국에도 생산거점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영국 웨일즈에도 생산라인을 갖춘다는 구상아래 타당성을 검토중이다.
이와함께 현재 GE로부터 전량 수입하고 있는 석영원자재의 국산화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코스닥에 등록신청했고 올해중 국제품질인증규격인 ISO9002
인증도 따낸다는 계획이다.
"기업은 고객을 위해 존재합니다.
고객으로부터 신뢰성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술개발 노력이
필수적이지요"
이사장은 국내 쿼츠웨어시장 점유율 1위란 1단계 목표달성에 만족하지
않는다.
세계최대의 쿼츠웨어 생산업체란 2단계 목표를 위한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오직 기술력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