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아들과 가난한 집 딸.

냉랭한 집안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가출한 아들은 딸을 만난다.

아들은 딸의 때묻지 않고 꿋꿋한 모습에 반하고 딸은 아들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에 빠져든다.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약속한다.

아들의 부모를 만나는 딸.

겉으로는 너그러우나 위선적인 태도에 자존심 상한 딸.

둘은 크게 다툰다.

다른 부잣집 딸은 아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가난한 집 아들은 다른
부잣집 딸을 짝사랑한다.

다른 부잣집 아들은 가난한 집 딸을 좋아한다.

신분의 벽에 부딪쳐 방황하는 사랑과 엇갈리는 사랑.

KBS1TV "TV소설-초원의빛" (월~금 오전 8시10~30분)은 그동안
멜로드라마에서 인기를 검증받은 갈등구조로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기본 줄거리만 떼어놓고 보면 칙칙하고 늘어지는 전형적인 아침드라마가
연상되지만 화면엔 밝고 따뜻하고 정감이 넘친다.

드라마는 "은하수" "하얀 민들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친숙해진
"TV소설"의 형식을 한껏 살린다.

서정적인 톤의 화면, 잔잔한 배경음악, 정제된 대사 위주의 편집,
간간이 주인공의 심리를 직접화법으로 들려주는 내레이션 등을 이전
드라마보다 한층 발전된 솜씨로 엮어낸다.

단조롭고 밋밋하지만 예전의 라디오드라마를 즐겨 들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킬만한 구성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가난한 집 딸 수진 (유호정)이 있다.

고달프고 힘든 삶 속에서도 그늘이 없고 씩씩하다.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커피를 팔고 일수놀이를 해서 번 돈으로 오빠의
공부 뒷바라지를 한다.

"못 올라갈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는 주위의 충고를 속으로 삭이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시청자들에게 동정을 사는 동시에 희망을 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드라마는 중심 인물간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암시를 주고
복선을 깔며 넘어간다.

가족과 이웃들은 때로 반목하고 다투지만 기저에 흐르는 끈끈한 정이
화면에 묻어난다.

여기에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져 보는 이를 낭만적인 분위기에 푹
빠지도록 만든다.

긴장감을 잃지 않는 갈등구조에 곁들여지는 훈훈함, 유호정 김규철
윤유선의 성실한 연기 등이 "초원의 빛"을 아침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25% 수준의 시청률을 유지시키는 힘이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