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평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자산기준 30대그룹에 새로 진입했다.

창업 20년도 채 안돼 이룬 위업이다.

더욱이 거평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가 불과 3-4년전임을
감안하면 그 성장사는 "신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평신화의 주인공은 나승렬회장(53).

초등학교졸업의 학력으로 대기업의 경리부장을 거친후 창업의 길을 택한
그는 94년이후 알짜배기 기업들을 잇따라 인수하며 재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그래서 그에겐 항상 M&A의 귀재라는 별명이 뒤빠르기도 한다.

김기웅 산업1부장이 서울 논현동 거평본사 회장실에서 나회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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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승렬 회장 약력 >>

<> 전남 나주 출생
<> 문평초등학교 졸업
<> 한국전자 경리사원
<> 롯데삼강 경리과장, 부장
<> 79년 금성주택 창업
<>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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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30대 그룹에 진입하셨습니다.

창업 몇년만이지요.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한 직후인 79년에 금성주택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니
18년만이군요.

그러나 제대로 기업의 틀을 갖춘건 역시 90년대 들어서라고 봐야겠지요"

-놀라운 성장입니다.

"제 스스로 생각해봐도 놀랍습니다.

지금의 본사사옥을 짓던 89년까지만 해도 이건물만 잘 완공시켜도
참 좋겠다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군요"

-30대그룹 진입은 영광스런 일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더많은 규제를 받게
될 텐데요.

"그렇습니다.

자산규모 2조 몇천억원짜리 하고 70,80조짜리 거대기업을 같은 틀에
넣고 똑같이 규제하고 주무른다는 것은 좀 잘못된 일입니다.

거평이야 5대기업의 계열사 하나만도 못한데 한묶음으로 취급되는
것은 말도 안되지요"

-30대그룹으로서 사회적 책임감도 커졌습니다.

"솔직히 그런 면에서 아직은 자기준비가 덜 돼있어요.

사실 내년께 30대그룹에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한보와 삼미가 쓰러지고 여러가지 자산산정 기준도 달라지는등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많이 생겼어요.

운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기업규모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스스로 평가하실때 자신의 어떤 점이 오늘의 사업성공을 이룰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남들보다 우직하다는 점이 사업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할까요.

예컨대 당장 금리면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특정 금융기관과 꾸준히
거래를 해서 신용을 쌓아갔습니다.

남과 거래할때 너무 야박하게 따지고 계산하지 않았다는 얘기죠.

실제로 난 수첩도 장부도 없어요.

타산적이지 않은게 오히려 도움이 됐던것 같습니다"

-그런걸 경영철학이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거창하게 경영철학이라고까지 말하기는 뭣합니다만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자는 신조로 생활한건 분명합니다.

안전하고 확실한 사업만 했죠.

큰 욕심내지 않는 안전제일주의라고 할까요.

은행가서 무리하게 돈을 꿔다가 사업을 벌이고 키울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거평의 성장사에서 기업인수를 빼놓을 순 없겠죠.

성공적인 기업인수의 비결이 있다면.

"인수대상 기업을 고를때 장래성있는 업종인가, 그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거평의 자금줄에 주름살이 얼마나 갈까, 손익에 미치는 영향은 또 얼마인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서 판단합니다.

잘못 했다간 모회사의 재무구조가 나빠져서 자본잠식상태로 빠진다든지
재무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대상기업의 자금상황을 파악한뒤 인수하고 또 그 기업의 자금여력을
이용해 다음기업을 인수하는 것이죠.

한 회사에서 남는 이익을 다른 쪽으로 이전시켜 가면서 전체적인 재무제표
관리를 튼튼히 해나갈수 있겠다 싶으면 인수합니다.

부실기업은 절대 인수 안합니다"

-시중에는 거평의 기업인수를 통한 성장과정을 놓고 권력배후설이니 하는
온갖 루머가 난무하더군요.

"지금까지 나는 청와대 경제비서관이나 재경원장관은 물론 차관도 한번
만나본적 없습니다.

하물며 더 만나기 어렵고 힘도 막강한 사람을 어떻게 만났겠습니까.

지금까지 거평의 성장과정만 봐도 그렇습니다.

어디 한건이라도 수의계약으로 기업을 인수한게 있습니까.

모두 공개경쟁 입찰이었죠.

그것도 1,2차 입찰때는 참가도 안하다가 유찰되고 나서 3차부터
응찰했습니다.

사전에 로비했다면 왜 1차부터 들어가지 않았겠습니까"

-배후권력을 통해 자금지원을 받았다는 설(설)도 루머라는 말씀이시군요.


"루머의 세계에서 지금까지 거평은 항상 블랙리스트 1호, 가장 경계해야
할 기업1호로 꼽혀왔습니다.

늘 그런 견제속에서 성장하다 보니 자연히 자본시장에 눈을 돌리게
됐죠.

회사채나 유상증자 교환사채 등을 통해 나름대로 길을 찾아 유동성을
확보해왔습니다.

그래서 자금에 대한 투명성만은 자신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자금사정 악화로 인한 "거평위기설"이 나돌았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우리는 항상 루머에 시달려오지 않았습니까.

실상이 그렇지 않은 만큼 개의치 않습니다"

-기업을 인수하면 기업문화의 조화라는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특히 거평이 인수한 기업들은 나름대로 각 분야에서는 한몫을 해
온 기업들이라 사원들의 개성도 유달리 강할텐데 이런 이질적 기업간의
문화를 잘 조화시키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겠습니다.

"인수기업들을 성급하게 거평 울타리안으로 끌어들일게 뭐 있느냐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대한중석이나 새한종금 포스코켐처럼 상호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너무 성급하게 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게 더 많다는 판단에서죠.새한종금
의 경우 그룹쪽에서 단 한사람도 보내지 않고 기존 인력을 그대로
뒀습니다.

시간이 가면 자연스레 거평그룹으로서의 연대감을 느끼게 되리라는
생각에서죠"

-금융업이나 제조업 모두 나름대로의 경영 노하우가 있어야 꾸려갈수
있을것 같은데.

문제가 없습니까.

"최고경영자, 특히 회장이 너무 깊은 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너무 샅샅이 알아서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면 전문경영인의 권위가
없어져요.

기업을 실제 운영하는 임원들의 힘이 빠지면 안되죠.

신규설립에 비해 기업인수가 갖는 장점도 따지고보면 기존의 인적구성과
생산 영업 등 제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조직을 바탕으로 더 발전시키고 합리화시켜나가려면 회장은
손익계산서를 비롯한 재정부문이나 설비투자 등 굵직굵직한 부분에
대해서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문경영인을 믿고 맡기신다는 얘기군요.

"그렇게 해야지 내가 다 하면 사장들은 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신흥그룹이면서도 거평의 조직이나 인적구성이 탄탄하다는 느낌이
드는게 바로 그런 경영방침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우량기업들만 인수한만큼 기존 직원들의 능력이 아주 우수해요.

그사람들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 오히려 조기안착에 도움이 된것
같습니다"

-이제 30대그룹에 진입했으니 2단계 도약계획도 있을 텐데요.

"우선 제조업쪽에서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사업을 키울 생각입니다.

다른 기업들은 동남아나 유럽 미국으로 나간다고들 하지만 거평은
되도록 국내에 제조기반을 두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한국에서 고임금을 주고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업종을
선택해야겠지요.

예컨대 반도체등 첨단산업 금융 장치 중화학 등을 들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업종을 중심으로 제조업을 키워나갈겁니다.

그래서 거평을 젊은 사람들이 유망하다고 판단하는 기업,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이 되도록 만드는게 저의 바람입니다"

-그래도 내수시장만 보고 기업의 미래를 걸수는 없는 노릇이죠.

''세계속의 거평''을 부르짖을 때도 되지 않았나요.

"새한종금이 홍콩과 인도네시아에 현지법인을 갖고 있고 얼마전
미국의 반도체테스트 업체도 하나 인수했습니다.

대한중석의 중국출자회사, 올초 인수한 태평양패션의 중국공장 등을
합치면 해외진출 실적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요.

게다가 기존 계열사들의 수출비중도 꽤 큽니다.

이만하면 굳이 세계화를 내걸지 않아도 어느정도 국제화돼 있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요.

그룹전체로 보면 외환차익도 많은 편이지요"

-그래도 거평이라고 하면 아직 건설 부동산개발 등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란 이미지가 강합니다.

"고정관념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러나 우리 계열사중 포스코켐은 매출의 75%가 수출이고 반도체는
80%, 대한중석은 30~40%를 수출합니다"

-모든 기업이 다 어려운 시기같습니다.

기업하시는 입장에서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금융시장이 빨리 안정을 찾아야겠다는 점입니다.

모든걸 은행에다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하니까 은행이 몸을 사리고,
그러다보니 경제전반이 마비상태로 치닫고 있습니다.

각자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제몫을 하고 제 구실을 할수 있도록
정부가 여건을 마련해줘야죠.

해외에서도 한국에 대해 신용이 회복되고 국내에서도 금융질서가 바로
잡힐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것이 가장 중요다는 생각입니다.

그 다음에는 각기업 스스로가 경쟁력을 갖출수 있도록 자구노력을
해야지요"

-어떤 취미를 갖고 계십니까.

"솔직히 말해 별로 없습니다.

굳이 든다면 바둑과 골프랄까요.

골프는 핸디 18정도로 잘 치지는 못하지만 요즘은 각계의 여러 사람들과
자주 필드에서 어울리는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주산실력도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단수가 높지는 않습니다.

2,3급정도 실력이니까.

그러나 정확성에서만은 자신있습니다.

제가 삼강산업(현 롯데삼강)에서 경리일을 볼때 주산을 8,9단 놓는
직원이 있었는데 늘 계산이 안맞았어요.

제가 다시 계산하면 속도면에서는 뒤지지만 그래도 딱 맞아떨어졌지요.

이런 신중함도 오늘날 거평을 일구는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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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평 어떤회사인가 >>

거평그룹의 이름뒤에는 항상 M&A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거평그룹을 일약 30대그룹의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 바로 M&A인
탓이다.

거평그룹의 22개 계열사중 16개가 인수한 업체다.

거평그룹은 M&A행진에 나서기 전인 90년도만 해도 무명의 기업이었다.

그러나 91년 거평식품,대동화학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거평그룹은
조금씩 재계의 눈길을 끌게 된다.

거평그룹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것은 94년 대한중석
인수때부터.

당시 총자산 1백75억원에 불과했던 거평은 훨씬 덩치가 큰 대한중석
(납입자본금 2백62억원)을 사들였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도 무리가 아니었다.

대한중석 인수를 계기로 재계의 "무서운 아이"로 주목받은 거평은 그이후
국내 반도체사업의 원조격인 시그네틱스코리아를 비롯 포스코켐,
정우석탄화학, 강남상호신용금고, 새한종합금융 등을 잇따라 사들이면서
초고속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반도체테스트업체인 ATE인터내셔널까지 인수, M&A의
손길을 해외로 뻗쳤다.

거평그룹은 30대그룹 진입을 계기로 반도체등 첨단기업으로 재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키워드는 "미래형 업종 포트폴리오"다.

떠오르는 샛별 거평그룹이 미래의 거성(거성)으로 자리잡을수 있을지
주목된다.

< 정리=노혜령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