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경희대 교수 / 경영학>

나는 문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얼마 전 교회 중등부 학생들의 독서를
지도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좀머씨 이야기"를
일게 되었다.

이 책은 어린이가 좋아할 동화이면서도 이미 40줄에 있는 나의 가슴을
흔들어 놓은 책이다.

책속에서 나는 동심으로 돌아가 유년시절을 아름다운 색깔로 채색하고
내가 마치 주인공이 겪은 유사한 사건들을 실제로 경험했던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책은 주인공이 2차 대전 직후 유년시절에 겪었던 사건들, 그 중에서도
좀머씨란 괴짜 아저씨를 중심으로 쓰여졌다.

좀머씨는 무언가에 쫓겨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1년 내내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을 근방을 쏘다니는 사람이다.

그가 왜 그렇게 편히 쉬지도 못하면서 틈만 있으면 계속 걷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자동차를 제공하겠다는 아버지에게 크고 분명한
어조로 내뱉은 말은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것이었고
그는 결국 죽음으로 그의 힘겨운 삶을 마감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좀머씨를 동정했지만 사실 그는 불가사의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 후인 어느날 나는 홀연히 그의 정체를 깨달았다.

좀머씨는 다름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 모두인 것을! 왜 이렇게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리고 1년 내내 이유도 모르면서 정신없이
걸어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이제부터라도 나는 자신의 삶이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하느 사람들에게 좀머씨가 한 말을 크게 외치면서
참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