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개발 중심의 정도경영".

나라계전 문성주사장(42)의 경영철학이다.

문사장은 인텔리전트빌딩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지난 85년 이립의 나이로
나라계전을 창업, 10여년만에 빌딩자동화시스템(BAS)업계 선두를 다투는
업체로 성장시켰다.

특히 기술면에선 빌딩자동화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1백% 국산화했으며
핵심부품을 포함, 하드웨어의 80%이상을 자체기술로 생산해 대부분 외국사와
합작하고 있는 여타 업체를 이미 멀찌감치 따돌려 놓았다.

이 회사는 연세 세브란스빌딩을 비롯 대우건설기술연구소 담배인삼공사사옥
등 대표적인 인텔리전트빌딩시스템을 설계한 실적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온.습도 바람조건 등 고도의 정밀설계가 요구되는 국립중앙
박물관 신축프로젝트의 IBS 설계도 수주, 작업중이다.

실적이 쌓이면서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고 창업 첫해 6천만원에 불과했던
매출도 급증, 지난 92년에는 1백20억원, 93년에는 1백70억원, 95년에는
1백87억원 등을 기록했다.

올해는 2백억원을 훨씬 웃돌 전망이다.

문사장은 "창업초기부터 기술개발에 전력투구한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고
힘주어 말한다.

과감한 기술투자로 핵심기술과 관련부품을 꾸준히 국산화해온 것이 치열한
경쟁을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이 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창업 바로 다음해에 자체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국내에는 관련서적이 전무, 그와 초기 창업멤버인 3명의 기술진은
해외를 돌며 관련 자료를 구해야 했다.

각종 전시회와 회의에 참가해 보고 듣고 묻고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일이 일사천리로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계절이 몇번 바뀌도록 이렇다할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실속없는 사업을 한다며 주변의 반대도 점점 거세졌다.

그만두고 싶었다.

"미래의 유망산업이 될 것이 확실한 BAS기술을 국산화해야 한다는 사명감
으로 겨우 버텨낼 수 있었다"고 그는 돌이킨다.

그렇게 3년,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빌딩자동화의 핵심부품의하나인 DDC(Direct Digital Controller)의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 88년이었다.

가속이 붙어 그해말 한글로 운영되는 최초의 국산 빌딩자동화시스템 "메가
-1000"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신이 났다.

그와 15명으로 늘어난 연구진은 밤잠을 잊고 연구에 몰두했고 이어 이듬해
에는 원격감시제어시스템과 다수의 자동화관련 소프트웨어를 내놓아 관련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기술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방침은 나라계전의 인력구성에 그대로
나타난다.

나라계전의 전체 직원 2백명여중 1백30명이상이 엔지니어 출신이다.

순수 연구인력만도 20명이 넘는다.

제품이 복잡하다보니 영업도 전문 엔지니어가 맡고 있다.

문사장은 "매출에 연연하지 않고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해온 것이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한때 잘나가던 두 K사와 독립기념관의 IBS를 설계할 정도로
지명도가 높았던 S사가 도산한 것은 자체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수주를 늘렸기 때문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그는 이제 내실을 충분히 다졌다고 판단, 해외시장 공략에 본격 나설
방침이다.

이를위해 해외 BA관련 전시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문사장은 "우리의 목표는 국내 최고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BAS업체인
미국의 하니웰과 존슨사를 따라잡는 것"이라고 밝혔다.

< 김용준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