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애스턴 마틴사는 영국의 자존심 만큼이나 스포츠카 분야에서 상업
성에 치우치지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켜온 회사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 초기의 스포츠카전문 회사가 그렇듯이 애스턴 마틴사도 라이오넬
마틴이라는 모터 스포츠광과 로버트 뱀퍼드라는 엔지니어가 한두대씩 손으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됐다.

1910년대에는 크고 작은 자동차 경주가 많이 있었는데 마틴과 뱀퍼드가
만든 차들은 성능이 뛰어나 당시 자동차 경주를 휩쓸었다.

특히 애스턴 클린턴이라는 경주에서의 마틴의 인기는 대단해 애스턴 마틴
이라는 이름을 걸고 1914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순수 스포츠맨이었던 그는 회사가 상업적으로 흐르자 순수 아마추
어 정신에 어긋난다고 해 1925년 자동차의 제작을 중단하게 됐다.

그러나 당시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업가들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세일즈에 뛰어난 버틀리라는 사람이 회사를 인수해 부호들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고급 스포츠카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2차세계대전까지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고급스포츠카 시장은 사양
길에 접어들어 애스턴사도 문을 닫게 됐다.

이때 회사를 구한 사람이 트랙터왕 데이비드 브라운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취미삼아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으나 라곤다사를 인수하면
서부터 본격적인 스포츠카 제작에 들어갔다.

라곤다의 엔진기술과 애스턴의 섀시기술을 접목해 더욱 세련된 스포츠카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DB-시리즈 스포츠카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1961년 이탈리아 디자이너 자가토가 차체를 제작해 만든 DB4GT
자가토가 백미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자동차 기술로 만든 엔진과 섀시부품에 이탈리아의 디자인이 결합
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물고기가 입을 뻐끔거리는 듯한 독특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단단하면
서도 당찬 보디는 디자인의 정수를 보는 듯했다.

이 차는 경주용 자동차에 쓰이는 엔진을 이용해 만든 고급 스포츠카
DB4GT를 다시 개조해 만들었다.

보디를 알루미늄으로 제작해 차 무게를 1천2백54kg까지 줄이고 압축비를
높여 3.7리터의 엔진에 출력을 2백85마력까지 끌어 올렸다.

그렇지만 자동차 경주에서는 페라리에게 번번이 패해 19대만을 만들고
중단됐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1990년 한 경매시장에서 1백50만 파운드라는 거금에
매매가 되면서 애스턴사는 다시 제작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섀시부품이 4대분 밖에는 남아있지를 않았다.

결국 30년전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자가토의 보디로 똑같은 사양의
DB4GT자가토 4대만을 만들게 되었다.

김상권 < 현대자동차 승용제품개발 제2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