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주말에는 브리사를 몰고 한적한 교외로 나갑니다.

겨울 햇살속에 비틀스 음악을 들으며 눈길위를 달릴때면 마치 영화속의
주인공이 된 것같은 착각에 빠지죠"

70년대 말께 운행됐던 역사속의 차를 몰고 97년의 서울을 누비고 다니는
한동수씨(25.홍대 미대 재학중).

그는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드카에 대한 진한 향수를 갖고 있는
"특이한" 사람이다.

브리사는 지난 74년 기아자동차가 양산을 시작, 81년 2.28 산업합리화
조치로 생산이 중단되기까지 8년간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차로 각광받으며
승용차시장을 석권했던 차.

배기량 9백85cc에 최고시속이 1백40km인 유럽형 정통 세단이다.

한씨가 이 차를 구입한 것은 지난 95년 겨울.

당시 모 여고 교사가 16년간 몰고 다니던 이 차는 거의 폐차 직전 상태에
있었다.

평소 골동품에 관심이 많던 한씨는 우연한 기회에 이 차를 구입한후 4개
월을 꼬박 수리를 위해 매달렸다.

부품을 구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여의도 고수부지에 방치된 또다른 브리사를 발견,
부품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도색과 판금도 새로 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은 시속 1백km로 달려도 끄떡없을 정도의 성능을 발휘
한다.

외관도 산뜻한 제모습을 갖췄다.

"브리사를 운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끝이 없죠.

거리에 나갈때마다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았어요.

어떤 중년신사는 아예 차를 막아놓고 한참을 구경할 정도였으니까요"

한씨에게 브리사는 이미 애인과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얼마전 오른쪽 백미러가 깨졌을 땐 며칠동안 마음이 아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씨는 이런 브리사와 잠시동안의 이별을 할 생각이다.

최근 강남에 사무실을 낸 이후 너무 바빠 차 관리에 자신이 없어 새로운
차주인을 구하고 있다.

"이 차를 최소한 10년 이상 운행할 수 있는 멋을 아는 신사분을 기다린다"
는 한씨는 "10년쯤 후에는 다시 재구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락처 (02)512-0296

< 정종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