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차의 세계] '오스틴힐리 스프라이트'..헤드램프 "인상적"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세계2차대전이 끝나면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경제불황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자동차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당시 최대 자동차 회사인
모리스와 오스틴을 합병하여 영국자동차합자회사(BMC)를 만들었다.
당시 모리스는 "모스리스 마이너"로 오스틴은 "오스틴 7"으로 영국의 소형
자동차시장을 이끌어 오고 있었다.
한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향후 미국의 잠재적인 자동차 수요를 예측하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레이서 출신인 "도널드 힐리"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1945년 스포츠카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미국시장을 겨냥한 스포츠카를
개발, 1952년 런던모터쇼에 출품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대량생산을 위해 안정적으로 자동차 부품을 공급할 회사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이 차는 런던 모터쇼를 참관하던 BMC의 기술 책임자 레오나르도
러드의 눈에 띄게 되고 곧바로 대량생산을 하자는 제의를 받게 된다.
이렇게 해서 오스틴과 힐리의 첫 합작품인 "오스틴-힐리 100"이 탄생하게
됐다.
이 차는 4단 수동 기어에 최고시속 100마일을 달릴수 있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됐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러드는 후속 모델도 힐리와의 합작품으로 기획하게
됐다.
이번에도 그는 당시 스포츠카 분야에서 오랜 경륜과 명성을 안고 있던
모리스 자동차를 제껴두고 오스틴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게 됐다.
BMC라는 이름으로 합쳐지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모리스와 오스틴은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러드 자신도 과거에 모리스 차동차회사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던지라
오스틴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차는 1958년 그 모습을 드러냈다.
948cc의 직렬 4통 엔진을 달고 축간거리 2,032mm의 소형 스포츠카로서 작은
요정이라는 "스프라이트"라고 이름지어졌다.
엑센트의 축간거리(2,400mm)와 비교하여 보면 차 크기와 그 날렵한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도어에는 "오스틴-힐리 100"과 마찬가지로 핸들이 없어 도어 위로 올라타게
되어 있었다.
또한 보릿도 요즘같이 선체를 들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엔진 부분만 장비가
가능하도록 사각형으로 작게 만들어 낼수 있도록 했다.
불편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만들어져 싼 가격으로 차를 만들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차의 특징은 애칭에서도 알수 있듯이 툭튀어나온
헤드램프에 있다.
개구리의 눈같이 헤드램프가 튀어나와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라니에이터 그릴은 어린아아기 히죽 웃듯이 생겨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개구리 왕눈이 스프라이트도 저렴한 가격의 스포츠카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이후 모리스 자동차에 의해 보수적인 스타일로 바뀌어 꼬마 자동차
"미지트"로 변신하면서 1979년까지 생산됐다.
김상권 < 현대자동차 승용제품 개발2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4일자).
겪고 있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자동차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당시 최대 자동차 회사인
모리스와 오스틴을 합병하여 영국자동차합자회사(BMC)를 만들었다.
당시 모리스는 "모스리스 마이너"로 오스틴은 "오스틴 7"으로 영국의 소형
자동차시장을 이끌어 오고 있었다.
한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향후 미국의 잠재적인 자동차 수요를 예측하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레이서 출신인 "도널드 힐리"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1945년 스포츠카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미국시장을 겨냥한 스포츠카를
개발, 1952년 런던모터쇼에 출품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대량생산을 위해 안정적으로 자동차 부품을 공급할 회사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이 차는 런던 모터쇼를 참관하던 BMC의 기술 책임자 레오나르도
러드의 눈에 띄게 되고 곧바로 대량생산을 하자는 제의를 받게 된다.
이렇게 해서 오스틴과 힐리의 첫 합작품인 "오스틴-힐리 100"이 탄생하게
됐다.
이 차는 4단 수동 기어에 최고시속 100마일을 달릴수 있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됐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러드는 후속 모델도 힐리와의 합작품으로 기획하게
됐다.
이번에도 그는 당시 스포츠카 분야에서 오랜 경륜과 명성을 안고 있던
모리스 자동차를 제껴두고 오스틴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게 됐다.
BMC라는 이름으로 합쳐지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모리스와 오스틴은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러드 자신도 과거에 모리스 차동차회사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던지라
오스틴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차는 1958년 그 모습을 드러냈다.
948cc의 직렬 4통 엔진을 달고 축간거리 2,032mm의 소형 스포츠카로서 작은
요정이라는 "스프라이트"라고 이름지어졌다.
엑센트의 축간거리(2,400mm)와 비교하여 보면 차 크기와 그 날렵한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도어에는 "오스틴-힐리 100"과 마찬가지로 핸들이 없어 도어 위로 올라타게
되어 있었다.
또한 보릿도 요즘같이 선체를 들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엔진 부분만 장비가
가능하도록 사각형으로 작게 만들어 낼수 있도록 했다.
불편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만들어져 싼 가격으로 차를 만들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차의 특징은 애칭에서도 알수 있듯이 툭튀어나온
헤드램프에 있다.
개구리의 눈같이 헤드램프가 튀어나와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라니에이터 그릴은 어린아아기 히죽 웃듯이 생겨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개구리 왕눈이 스프라이트도 저렴한 가격의 스포츠카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이후 모리스 자동차에 의해 보수적인 스타일로 바뀌어 꼬마 자동차
"미지트"로 변신하면서 1979년까지 생산됐다.
김상권 < 현대자동차 승용제품 개발2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