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력은 짧은데 핸디캡은 더 낮다"

골프친구들 사이에는 이런 경우가 흔히 있다.

더욱 후발주자의 나이가 많기라도 하면 선배의 마음은 뒤지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가득차있게 마련이다.

그 일념이 바로 라이벌의식일 것이다.

한국남씨 (68.한국남산부인과의원원장)와 양철우씨 (71.교학사사장)가
꼭 그런 경우다.

구력 30년인 한씨의 핸디캡이 만년 18인 반면, 구력 15년의 양씨는
핸디캡 9로 "하극상"이 돼버렸다.

두 사람의 골프친교는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씨가 양지CC 지우회 멤버로 가입하면서 모임회장이었던 양씨의
골프집념에 반해 가까워진것.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핸디캡은 18로 비슷했었다.

라이벌은 그러나 환갑을 전후한 시점부터 10년동안 "급속한 전진"과
"제자리 걸음"으로 대비되는 골프역정을 걸어온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양지CC와 한양CC를 오가며 셀수없는 라운드를
해왔고, 한양CC에서는 "목욕탕 동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새벽골프에
심취하기도 했다.

출근전 새벽 5시에 라운드를 한뒤 목욕탕에 들어가면 두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두 사람의 골프는 지금 핸디캡 차이만큼이나 다른 무엇이 있다.

한씨가 건강을 목적으로 여유있게 라운드하는 반면, 양씨는 나이가
들수록 골프에 철저해지고 있다.

한씨는 스코어에 별 신경을 안쓰며 적당히 기브도 준다.

병원일을 핑계로 연습도 거의 안하는 편이다.

필드에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양씨는 "노익장"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골프에 심취해있다.

연습장에 거의 매일 나가는 것은 물론이요 필드에서는 단 10cm라도
기브가 없다.

책과 비디오를 통해 연구하며, 괜찮은 클럽이 나오면 바로 구입하는 등
열정이 유다르다.

두 사람의 주무기도 골프철학과 무관하지 않은듯하다.

한씨는 쇼트어프로치를 거의 1퍼트거리에 갖다붙여 스코어를 관리할
정도로 어프로치샷에 강하다.

반면 양씨는 나이답지 않게 200m를 훨씬 넘는 드라이버샷으로 상대의
기를 죽인다.

한씨는 "30년전 골프장 캐디에게 2주동안 배우고 필드에 나갔으니
기초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그래서 진전이 없는 것같다"고 자신의 스윙을
말한다.

라이벌의 그것에 대해서는 "교과서적 스윙"이라며 극구 칭찬한다.

사업가로서의 집념을 골프에도 반영한듯 완벽에 가까운 스윙을
구사한다는 것.

두 사람의 라운드에서는 내기가 없는 것도 특징.

지우회 나머지 멤버들은 작으나마 내기를 하지만 양씨가 회장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내기를 멀리해온 것이다.

한박사는 나이가 들어서도 골퍼의 심리는 젊었을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며 "상대방이 잘치면 굿샷을 외치고, 실수를 하면 아깝다는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제기랄" "잘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골퍼라면 다 똑같을
것이다"라고 특유의 유머를 잊지않는다.

< 김경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