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는 말레이반도 서쪽에 자리잡은 작은 항구도시이다.

말라카 해협에 면해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상업과 전략의 요충지였으며
이런 이유로 세계의 열강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도 많이 했던 장소이다.

말라카의 주인은 강자가 바뀔 때마다 여러번 바뀌었다.

통치자들은 그들의 문화와 유적을 말라카에 남겼고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역사적인 도시가 되었다.

최초의 말라카 주인은 술탄의 통치를 받던 말레이 사람들이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정통 이슬람 교도들과는 관습이 많이
다르다.

그 이유는 남부 인도에 사는 인도 상인들에 의해 이슬람교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한손엔 칼 한손엔 코란"을 외치는 핵심 이슬람
교도들의 정복과정에서 이슬람화 되었지만 말레이 반도의 이슬람화는 장사를
통한 상호 접촉을 통해 전파되었다는 것도 상당히 특이하다.

아시아와 그 서쪽의 세계를 잇는 말라카에서 술탄이 확고한 힘을 갖고
왕국을 건설한 것은 14세기 중반이다.

현재는 말레이시아내에 여러개의 술탄 왕국이 있지만 말라카의 술탄은
말레이반도 최초의 술탄 왕국이 만들어진 곳으로 현 말레이시아의 정체성이
이때부터 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화가 명나라의 함대를 이끌고 1405년 말라카를 방문할 정도로 상업
항구 도시로 말라카는 15세기에 번창했다.

말라카는 시암 왕국(현 태국)의 공격도 물리치는 등 그 안전성을 더해가는
듯 했으나 새로운 땅을 찾아나선 포르투갈인들에게 1511년 무너지고 말았다.

포르투갈인들은 말라카를 약 130년동안 통치했다.

그들이 남긴 유적으로는 요새터인 파모사(Famosa)와 성폴 성당(St. Pauls
Church)이 있다.

1641년 말라카를 차지한 네덜란드인들은 도시를 체계적으로 꾸몄다.

이들이 남긴 유적은 1650년 지은 총독 관저(The Stadthuys), 1753년 지은
크리스트 교회 등이 있다.

아직까지도 말라카 강 주변에 있는 일반 집들에서 문이 있는 쪽의 벽면은
좁고 뒤쪽으로 길게 늘어지는 전형적인 네덜란드식 건축 형태를 볼 수 있다.

1795년부터는 영국이 말라카를 통치했다.

중간에 네덜란드가 다시 차지한 적도 있고 2차 세계대전중에는 일본의
수중에 들어간 적도 있었지만 1957년 말레이시아가 독립할 때까지 영국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주인이 많이 바뀌는 동안 말레이인들의 세력은 많이 약화되었고
오히려 타지에서 이주해 온 중국인들이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말라카강을 중심으로 남쪽은 유럽풍의 건물들이, 북쪽엔 중국풍의 건물이
많은 것도 말라카의 특징이다.

말라카에 있는 중국인들의 공동묘지인 부킷차이나는 중국 영토 밖에 있는
가장 큰 중국인 공동묘지이다.

이곳에는 정화를 따라왔던 사람들부터 500년동안 말라카에서 살았던
중국인들이 묻혀있다.

말라카에서 현재 말레이적인 것을 느낄 수 있는 유리한 장소는 성폴언덕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술탄의 궁전이다.

전략 요충지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말라카이지만 현재 상업적 기능은
거의 쇠퇴하고 관광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인도 중국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내로라하는 세계의 상인들이
드나들었던 곳이지만 바다가 얕아 큰 배가 접안할 수가 없어 항구로서의
기능은 거의 잃어버렸다.


<< 여행정보 >>

말라카는 고속버스로 콸라룸푸르까지 2시간(약 149km), 싱가포르까지
5시간반(약 220km)이 소요된다.

싱가포르~말라카 노선은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비행기는 싱가포르와 말라카 사이에 펠랑기 항공이 운항하고 있다.

시내는 대부분 걸어다닐 수 있으며 자전거가 끄는 트라이쇼도 이용할
수 있다.

숙소는 호스텔에서 고급 호텔까지 다양하다.

콸라룸푸르에서는 일찍 출발하면 당일로 다녀올 수 있지만 하루이틀
묵으면서 중국인이 사는 말레이시아를 느껴볼 것을 권한다.

가족 단위로 싱가포르를 여행한다면 말라카를 일정에 넣어볼만 하다.

해변이나 정글 산이 위주인 동남아여행에서 세계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말라카이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관광청 서울사무소에서는 11월 여행지로 말라카를 선정,
여행홍보 및 안내를 해주고 있다.

문의 779-4422
강문근 < 여행가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