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4일 종합주가지수가 18포인트나 떨어져 3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한데
이어 5일에는 장중한때 800개가 넘는 종목이 하락, 730선이 무너지는
공포감을 보이기도 했다.

주가가 떨어져 주식이 싸지는 것이 최고의 재료임에도 불구, "사자"가
자취를 감추고 "팔자"만 쏟아지는 투매현상이 난무했다.

그나마 후장들어 증시부양 루머가 도는 바람에 낙폭이 줄어들어 5일
종합주가지수는 전일보다 **.**포인트가 내린 73*.**에 마감됐으나
불안감은 쉽게 걷히지 않고 있다.

이번 증시붕괴의 원인으로는 과도한 신용투자 등 시장 내부의 수급
불균형,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 등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겠으나
사정한파가 투자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서울 버스비리사건에서 시작된 사정작업이 공직자 정치권 금융권으로
확대되면서 증시에선 심상찮은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증권계의 한 관계자는 "그렇잖아도 주가가 불안하던 시점에 사정바람이
불면서 증권사 지점마다 큰 돈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거기에 소액투자자
마저 가세,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연쇄반응을 몰고왔다"고 말했다.

큰 돈들의 증시철수엔 불안감이 잔뜩 배어있다.

증권계나 주식시장이 직접적인 사정대상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1금융권에
대한 사정과정에서 자금의 연결고리는 필시 제2금융권이나 상장사로 이어질
것이고, 그럴 경우 주식시장도 무사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사정과녁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이다.

또 사정한파가 장기화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튈 경우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리란 우려도 적지않다.

정종렬 신영투신사장은 "사정한파로 자금시장이 얼어붙어 금리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기업부도와 함께 경기가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주가급락을 증시만의 문제로 가벼이 생각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증권계의 관심도 바로 이대목에 쏠려있다.

금리로 대표되는 자금시장의 민심이 어느 쪽을 가리킬지 촉각이 곤두서
있다.

사정의 반작용으로 금리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10% 경쟁력 향상운동"은
수포로 돌아가고 주식시장은 더 쳐다볼 것이 없다는 반응.

사정이란 돌출변수는 장외악재이고 장외악재에 대해선 주식시장이 강한
내성을 보이지만 그것이 내부악재로 변질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시장 내부적인 문제도 적지 않다.

9월부터 허용된 2부종목 신용이 두달만에 큰 짐이 되고 있다.

주식시장 전체 신용융자가 3조원을 넘은데다 추가로 빌려줄 돈은 없고
만기가 가까와지니 "사자" "팔자"간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

S증권의 한 지점장은 "신용을 쓰지 않은 투자자들도 평균 20%의 손실을
입고 있는데다 신용의 경우 담보부족 계좌가 지점당 하루평균 2-3개가
생겨나고 있다"며 주가급락에 따른 깡통계좌 양산을 우려했다.

시장자율과 투자자 자기판단을 명분으로 2부종목 신용확대 정책을
실시했지만 결과적으론 한국증시의 수준을 잘못 짚은 꼴이 됐다.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도 신용이 털릴 때까지 기다리자는 입장이고
보면 과다한 신용물량은 두고 두고 주가발목을 잡을 모양이다.

외국인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다.

자금운용을 단기간에 해치우는 홍콩의 기관투자자들은 향후 6개월간
미련이 없는 곳으로 한국을 지목, 자금을 빼가기 시작했다.

장기자금인 미국은 아직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으나 투자의사가
주가전망에서 결정된다는 대목이 꺼림직하다.

이럴때 당국이나 업계가 들고나오는 단골메뉴가 기관투자자 순매수 우위,
주식 공급물량 억제 같은 조치이나 지금은 그런 "성의"가 문제가 아니라
자금시장의 동요를 막을 수 있는 정책의 예측가능성과 투명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 허정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