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및 일본에서는 한가지 기업으로 대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대를 잇는 사업자가 많지 않다.

기업환경이 바뀔 때마다 너도나도 업종을 바꿔 나간다.

인기업종으로 몰려 다니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꿋꿋이 자기의 사업분야를 지켜나가는 사업자들이 더러 있다.

이처럼 대를 이어가는 기업인들을 부추겨 줄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아쉽다.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3대이상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업체는 장수석기 삼부자종합공사 등 40여개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3대이상 대를 이어가는 이들 기업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업은 인쇄전문업체인 보진재이다.

이 회사는 인쇄분야에서 4대를 이어오고 있다.

김준기회장 등 4대기업인 모두가 한결같이 학력이나 재력면에서 충분히
다른 대규모사업도 할수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선친의 사업을 빛내기에
바빴다.

3평짜리 국화빵집에서 출발한 고려당도 3대째 제과점사업을 이어가는
기업이다.

정밀화학 분야에서 선진국 기술을 앞지른 상장업체인 이화산업도 3대째
염료분야 사업을 이어간다.

단추만은 세계 최고를 만들겠다는 유창양행과 고급낚싯대를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하는 승작 등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들도 3대를
이어가는 기업이다.

현재 대를 이어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은 한결같이 제도적 도움없이 스스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왔다.

이에 비해 새미콜사발(도자기.7대째) 신내동옹기(옹기제조.4대째) 구룡벼루
(벼루.3대째) 삼부자종합공사(가구.3대째) 등 전통공예분야 사업체들은 아직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삼정유기 등 대가 끊어지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사업승계업체가 이같이 드물어지고 있는 것은 이를 북돋우는 제도가 미흡
한데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더욱이 금융지원제도도 창업지원에만 치중, 산업기반기술의 층을 두텁게
하는 사업승계에 대해서는 지원을 해주지 않고 있는 것도 커다란 흠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기금의 지원으로 공예전문업체를 선정, 사업을 이어가는 전통
공예업체에 대해 자금및 시책혜택을 마련하던 것마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세제를 비롯, 금융지원 시책지원 등 어느 곳에서도 사업승계를 위한 대책은
거의 사라져 버린 상태다.

이에비해 선진국들의 사정은 다르다.

일본은 중소기업청이 매년 사업승계를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이들에 대한 자금지원도 강구한다.

독일은 중소기업을 자식이 승계받을 경우 상속세중 일정액을 공제해 주고
기업운영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7년간 상속세및 증여세를 유예해
준다.

이밖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 중소기업이 발전한 대부분의 유럽나라들은
기업승계에 대한 세제금융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고급가구를 비롯 도자기 기계부품 정밀화학 전통공예 악기 등 산업기반기술
분야및 전통기예분야 업종에서 대를 이어 사업을 하면 기술개발과 전문성이
높아질 수 있는 분야가 상당히 많다.

이제 대를 잇는 기업에 대해 별도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사업승계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소기업 후계자에 대해서는 상속세 유예 등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 이치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