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랄 것도 못되요.

저하고 여직원 2명이 전부입니다.

경영회의는 참석하란 말도 않해요.

그러면서도 툭하면 "물류비 절감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구요.

누가 물류팀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중소직물업체인 P기업 물류팀에 근무하는 L과장은 지원부서 중에서도
물류담당부서 만큼 "천대"받는 데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P기업 물류팀의 신세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2년전 발족초기엔 사장의 특별지시로 만들어진 부서답게 꽤 파워가
있었다.

팀원도 11명이나 됐다.

고참 총무부장이 팀장을 맡고는 "물류합리화 5개년 계획"을 세우는 등
요란을 떨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건 장사가 잘 될 때 얘기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수출이 줄어들자 물류팀에 배정됐던 물류개선
예산은 통째로 없어졌다.

물류팀장이 총무부로 원대 복귀하면서 팀원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출범 2년만에 물류팀은 "보트피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비단 P기업만이 아니다.

대한상의의 조사에 따르면 물류전담부서가 없는 기업이 46.9%나 된다.

회계처리상 물류비를 별도 항목으로 산정하고 있지 않은 기업도 37.9%나
된다.

성과분석을 위한 기초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분석이 안되니 계획도 주먹구구식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물류마인드"가 없다는 얘기다.

물류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니 애당초 물류에 대한 투자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표적인게 표준화 문제.

기존의 방식을 뜯어고쳐 "표준"에 맞춰야 하는 만큼 돈이 들게 돼 있다.

영업도 안되는 판에 가외돈을 들일 생각은 꿈에도 않는다.

통계를 보면 이런 실태는 확연히 드러난다.

물건을 싸는 포장규격부터가 제각각이다.

KS포장규격 사용률은 10%수준에 불과하다.

80%가 넘는 회사들이 서로 다른 규격을 사용하고 있다.

표준파레트의 사용률도 낮기는 마찬가지다.

일관수송용 표준파레트인 T-11형(1,100x1,100)을 사용하는 기업은 42%밖에
안된다.

포장규격과 파레트를 업체마다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새는" 돈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제품의 운송 보관 하역 작업 등이 원활히 이루어 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부문의 표준화가 이런 수준이니 거래방식과 거래단위의 표준화 등
소프트웨어부문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표준화 수준이 낮은 기업은 결국 유통경쟁에서 밀리게 돼있다.

물류혁신이 도대체 안되기 때문이다.

최근 물류팀을 신설한 플라스틱 가공업체 H사의 경우가 그렇다.

자체적으로는 물류합리화가 어렵다고 판단한 이 회사는 전문업체에 외주를
주기로 했다.

비용이 많이 줄어들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물류업체가 H사의 물류장비들이 표준화가 안돼있다며 추가요금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외주는 포기하고 말았다.

이 회사 K부장은 "지금이라도 표준화를 하지 않으면 경쟁이 안된다고
보고했다가 욕만 먹었다"고 말했다.

비교적 돈이 덜드는 표준화도 제대로 못하는 판국에 정보화는 더욱
어렵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기본적인 정보화 의지조차 없다.

물류온라인망을 구축한 업체는 34%.

일본의 80%와 비교하면 게임이 안된다.

EDI(전자문서교환)와 물류바코드의 도입실적도 각각 25%와 32%에
불과하다.

개별업체들의 정보화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전체 기업을
연결하는 통합물류정보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건 요원한 일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가 연말까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내년부터 종합정보물류망의
상용서비스를 실시한다지만 성과는 기대난이다.

물론 표준화 정보화는 개별 기업이 나서서 투자를 하기엔 다소 위험요인이
많은게 사실이다.

A사의 투자실패사례를 보자.

전국에 3개의 생산공장과 10여개의 지사를 운영하고 있는 A사는 올들어
계열공장 및 거래처를 하나의 전산망으로 연결하는 "전국물류정보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사내용"이라는 한계가 드러나는 데는 채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지사가 없는 지역이나 신규거래선과 거래를 할 때는 상대방이 따라오질
못하는 것이었다.

A사는 EDI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상대방은 팩스로 정보를 달라고 하니
아무 소용이 없게 돼버렸다.

이런 현실에서 기업만을 탓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표준화와 정보화를 골자로 한 물류합리화가 "하면
좋아지는" 선택코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필수코스가 됐다는 얘기다.

"물류혁신 없는 기업은 도태를 면할 수 없다"(물류협회 안태호회장)는
게 현실이다.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을 요구하기 전에 기업들이 물류를 보는 눈부터
바꿔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고경영자부터 물류부서에 관심을 갖고 물류효율화전략을 주도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물류마인드없는 기업에 물류SOC를 확충해 주는 건 컴맹에게
펜티엄컴퓨터를 사주는 꼴"이란 비난을 면할 수 있다.

< 정리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