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어렴풋한 희망마저 없어졌습니다. 명예퇴직이라도 해야 할 모양
입니다"

지난달 26일 정부가 "은행책임경영체제"를 발표했을때 한 시중은행
고참부장이 농담반진담반으로 한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임이사숫자가 현재 14명(감사제외)에서 12명(납입자본 5,000억원이상
인 은행기준)으로 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아도 "하늘의 별따기"였던 임원되기가 더욱 힘들어졌으니
그럴만도 하다.

정부의 새로운 비상임이사회제도도입을 바라보는 대부분 은행원들의
시각은 이 고참부장과 똑같다.

비상임이사회가 은행경영을 주도하게 되고 은행장과 감사를 선출하게
되는 것등은 어쩌면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임원자리가 줄어드는데 따른 인사적체심화가 더욱 큰 관심이다.

더욱이 이사회멤버가 아닌 감사자리도 앞으론 내부인사가 아닌
외부인사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책임경영체제구축이란 명분을 충족시키기위해서라도
"감사권독립"을 외칠게 분명하고 그러자면 자연 재정경제원이나 한국은행
출신의 외부인사가 시중은행의 감사자리를 차고 앉을게 확실하다.

이렇게되면 감사를 포함한 은행임원자는 실제 3자리가 줄어들게 된다.

은행들은 내년에 임기가 되는 임원을 퇴임시키고 신임임원을 선임하지
않는 방법으로 상임이사숫자를 줄일 생각이다.

임원승진을 목전에 뒀던 고참부장들로선 임원승진기회가 원천봉쇄될게
뻔하다.

궁여지책으로 "이사대우"나 "집행이사"를 선임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지만 의결권이 없는 비등기이사라는 점에서 상임이사엔 비할 바가
못된다.

그래도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제일은행은 지난해 이철수행장의 퇴진으로 현임원이 14명인데다
내년주총에서 임기가 되는 사람이 8명이나 된다.

일부를 연임시킨다해도 부장중 2~3명은 임원이 될수 있다.

서울은행도 현재 임원이 감사포함 13명으로 굳이 임원수를 줄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조흥, 상업, 한일, 외환 은행과 국민은행의 부장들은 "별달기"를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현직 임원이 15명이어서 당장 줄여야하는데다 임기만료임원도 그리 많지
않아서다.

문제는 인사적체심화만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임원선임과정이다.

공급(사람)은 그대로인데 수요(자리)가 줄었으니 임원이 되기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건 뻔하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각종 "로비"와 "상대방헐뜯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임원축소에 따른 직원들의 사기저하를 방지할수 있는 각종 대안을
강구하되 상임이사 선출기준을 투명화, 각종 잡음을 없애는게 책임경영체제
구축의 필요충분조건이란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