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담아낸 에세이집 2권이 출간돼
가을 출판가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원로시인 조병화씨(75)가 인생의 막바지에서 자신의 생활과 상념, 그리고
인생관을 편지글로 펼쳐보인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편운재에서의
편지"(둥지간)와 성공회대 신영복교수(55)가 아스라한 과거사와 살아 꿈틀
거리는 현재가 공존하는 이땅 곳곳을 직접 찾으면서 느낀 단상을 엮은
"나무야 나무야"(돌베개간)가 동시에 나온 것.

이들 책은 저자의 세대가 다르고 지나온 삶의 과정이 다르지만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인간 삶의 뒤안을 차분히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을철 책읽기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조병화시인의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는 고희를 한참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인생과 꿈, 그리고 사랑에 대한 풍부한 감상을 담아 날로
메말라가는 세태에 하나의 경종이 되고 있다.

모두 124편의 짧은 연서속에 노시인의 사그라들지 않는 낭만과 정열,
그리고 자신만의 사랑을 조심스럽게 가꿔가는 모습을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언제부터인가 생애의 종말의식이 강해져 늘상 삶을 미리
정리해 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이 편지들속에 삶의 전부가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고 적었다.

다음은 시인의 식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는 서신의 일부.

"일생을 살아가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꿈과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젊었을 때 사랑보다 더 중요하고, 늙어서는 사랑이 꿈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략)

나도 젊었을 땐 꿈으로 사랑을 물리쳤지만 지금은 나에게 필요한 것은
꿈보다 사랑이옵니다.

밤이 깊어졌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이에 반해 신영복교수의 "나무야 나무야"는 사회.문화비평서의 성격이
짙다.

국토 곳곳에 얽힌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역사와 사회,
그리고 현실문화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는 것.

신교수를 일약 베스트셀러작가로 부상시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88년간)
의 연장선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바탕으로 혼돈된 문화와 동요하는
전환기적 사회상을 비판하고 있다.

"짧은 글이라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않고 화두만 던지듯 쓰고자 했지만
군데군데 욕심을 부린 곳이 눈에 띈다"는 저자는 함께 실린 그림은 글에
담지 못한 것을 보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직접 그린 것이라고.

작가 특유의 폭넓은 사유에 담담한 글쓰기가 조화된 이 책은 경박한 표피
문화를 벗어나고자 하는 독자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얼음골 스승과 허준" "우리가 헐어야 할
피라미드-반구정과 압구정"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갑니다-온달산성의 평강공주"등 25편이 실렸다.

< 김수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3일자).